아빠 껌딱지가 된 딸, 독재자가 따로 없다[40육휴]

최우영 기자
2025.12.20 07:30

[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43주차 > 아이의 재접근기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껌딱지 모드에 들어간 딸과의 행복한 시간. 대부분의 껌딱지 시간대가 이렇게 평화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전쟁과도 같다. /사진=최우영 기자

한동안 혼자서도 곰실곰실 잘 놀던 딸이 별안간 껌딱지 모드로 돌입했다. 아빠 엄마가 매일 집에 있는데도 마치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안긴다. 다른 부모들의 경험담을 보니 재접근기(Rapprochement)라고 한다. 다른 집과 다른 점은 엄마보다 주로 아빠한테 안겨서 떨어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한때는 딸과 끌어안고 그저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가만히 아빠 품에 안겨서 자던 딸과 눈이 마주치면 서로 조용히 미소 짓는 풍경을 꿈꿨다. 그런데 정작 껌딱지가 된 딸과의 시간이 그렇게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때리다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유아 독재'
2~3주 전만 해도 이렇게 혼자서 잘 놀던 아이가 요새는 꼭 아빠한테 달라붙어 손을 휘두르거나 생떼를 부린다. /사진=최우영 기자

품에 안긴 딸은 언제나 제멋대로 군다. 우선 안으라고 요구할 때부터 재촉이 들어온다. 안고 나면 마치 택시를 탄 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지시한다. 주로 자신이 관심을 둔 '선반 위'나 '서랍 속'이 대상이 된다. 방마다 이동하다 지쳐 잠시 내려놓으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며 양다리로 아빠 몸통을 감싸고 힘을 준다.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특히 엄마가 안고 놀아줄 때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얼굴을 할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아빠 얼굴에도 손바닥을 마구 휘둘러댄다. 정색하고 "하지 마"라고 하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한 대 더 때린다. 어릴 때 버릇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훈육을 하며 언성이 높아진다.

이젠 좀 머리가 컸다고 혼내는 분위기는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그때부터는 웃지도 않고 눈도 안 마주치며 부모를 외면한다. 한참을 혼낸 뒤 돌아서서 혼낸 자리를 떠나려고 하면 그제야 울면서 달려와 안아달라고 보챈다. 마치 전쟁통에 도망가는 피난민 아이가 떠오르는 모양새다. 마음이 누그러지며 안고 달래줄 수밖에 없다.

또 안고 한참 달래주다 보면 어느새 아빠를 밀쳐내며 혼자 놀겠다고 우긴다. 혼자 놀게 놔두면 어느 순간 맥락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성을 낸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을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이젠 진심으로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아직 덜 자란 아이의 뇌…폭력과 울음은 '구조 신호'
가위를 갖고 놀지 못하게 뺏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반항하는 딸. 소리 지르지 않으면서도 단호하게 말리는 중이다. /사진=최우영 기자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안기다가 외면하고, 화내다가 울거나 폭력적으로 군다는 게 재접근기 유아에게 흔하게 나타난다는 걸 알고 안도했다. 우리 아이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자체로 일단 부모는 한숨을 돌리게 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감정이 폭발하는데 정작 이를 진정시킬 뇌의 이성적인 부분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정이 폭발할 때는 안겨있던 부모의 품조차 '자극'으로 느끼고 밀어낸다는 것이다. 아빠를 밀치거나 때린 뒤에 반응을 보며 자신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고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안기고 싶은 마음과 밀쳐내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면서 아이 스스로도 제어를 못 한다는 게 '재접근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아직 말문이 안 트인 것도 아이의 답답함을 부채질하는 요소일 것이다. 17개월 된 딸은 이제 막 '아빠' '엄마' '이거' '꺼뿌꺼뿌' 정도의 말을 반복적으로 할 줄 안다. 말하고 싶은 욕구는 흘러넘치는데 표현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게 얼마나 속상할까. 간헐적으로 터지는 '기습 울음'은 자신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거나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의 좌절감 표현이라고 한다. 분노 발작(Temper Tantrum)이라는 전문용어도 있다.

결국 딸이 엄마 아빠를 때리거나 우는 건 표현이 부족한 아이가 서툴게 보내는 '구조 신호'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구조 신호를 보내는 아이에게 지금처럼 언성을 높여 훈계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아이의 뇌가 더 발달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바위처럼 평온하게 기다려주는 아빠가 되기로
저녁에 안고 재우다가 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빠를 밀쳐고 홀로 누워있는 딸. 당황하거나 빨리 자라고 보채지 않고 그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사진=최우영 기자

이 시기 부모가 지녀야 할 가장 좋은 태도는 '평온한 바위'라고 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주며 아이의 행동에 차분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이의 돌발 행동 때문에 감정이 요동치더라도 지금처럼 소리를 지르며 혼내지 않고 차분하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아이의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제한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생떼 부리는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가위를 갖고 놀지 못하게 해 속상하겠구나. 기분이 안 좋겠지만 그래도 엄마를 때리면 안 돼"라고 말하며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아이가 다 울고 난 뒤에는 다시 아빠나 엄마에게 안길 때까지 기다려줬다. 십수 년 전 봤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오은영 박사에 빙의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사춘기 자녀 키우는 친구들을 보며 위안 삼기로 했다. 청소년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요즘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입 다물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한 친구는 "질풍노도의 사춘기 X랄을 겪어봐야 애기 때 '땡깡'이 얼마나 귀여운지 알지"라며 핀잔을 준다. 정작 나는 사춘기까지 아이 키워놓은 그 친구가 부럽기만 한데…. 군인은 대학생을, 대학생은 직장인을, 직장인은 군인을 부러워한다던 만화가 떠오른다.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건 육아에서도 통하는 얘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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