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36주차 > 아이와 함께 동네 한 바퀴

경제학에서 일컫는 '양의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는 한 경제주체의 행동이 의도와 무관하게 다른 이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말한다. '좋은 커피 향기'나 '아름다운 음악'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내가 잠 깨려고 마시는 커피 향기와 내가 즐기려고 듣는 음악이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끔 유모차 산책에 나서면 어린아이야말로 '양의 외부효과'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출퇴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굳어있던 표정의 주민들은 아기가 손 한번 흔들어주면 화사한 미소로 반겨준다. 바쁘게 조깅하던 어르신들은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발걸음을 멈추고 이내 이야기꽃을 피운다. 콩알만 한 아이 하나가 이렇게 동네 '인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를 가장 반기는 건 동네 아주머니들이다. 요즘 서서히 찬 바람이 불면서 아이 외투를 입히고 나가는데도 이분들의 첫 멘트는 거의 다 비슷하다.
"애 너무 춥겠다. 더 두껍게 입혀야 한다."
어찌 보면 부모에 대한 가벼운 타박일 수도 있지만 내 아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담긴 말씀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긴다. 육아에 관한 자기 경험을 얘기하며 조언으로 끝내는 경우도 많다. "나는 애 셋 낳았는데 요즘엔 그렇게 많이 낳을 필요 없다"거나 "애기 쪽쪽이 오래 물리면 입 모양 안 좋아지니 단호하게 끊으라"는 식이다.
유모차에 씌워 놨던 방풍 커버를 벗겨야 반겨주는 분들도 있다. 동네 공원에서 유모차 안의 아이를 확인한 사람들은 "진짜 애기가 타고 있었다"며 웃는다. 적지 않은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다니는 것만 보다가 '사람 아기'를 태운 걸 오랜만에 본다는 설명이었다.
한 중년 남성은 아이에게 연신 까꿍 놀이를 하며 말도 못 알아듣는 내 딸에게 "아저씨랑 같이 갈래?"라고 농을 던졌다. 우리 부부나 그분이나 다 웃는 분위기였는데 그분의 옆에 있던 초등학생 딸은 "아저씨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다 구속돼"라며 자기 아빠를 끌고 사라졌다.

가끔 놀이터에 아이를 풀어놓으면 '교통정리'가 된다. 무질서하게 떠들고 뛰어다니던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도 '얼딩'(어린이집 다니는 연령대의 아기)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아이가 미끄럼틀 계단을 네 발로 등반할 때면 행여 아기 손을 밟을까 봐 조심스러워하며 멀찍이 떨어진다. 그네를 수직으로 회전시키며 거칠게 놀던 초등학생들도 아기가 눈에 들어오면 그넷줄을 붙잡아 흔들리지 않도록 만든다. 자기 친구들이 혹시나 아기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봐 "아기! 아기!" 소리치며 상황을 전파하기도 한다.
가끔 내 아이가 언니 오빠들이 쓰는 목마를 타고 싶다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이를 말리는데, 오히려 놀이터에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지켜보던 부모들은 이 상황을 적절히 활용한다.
독자들의 PICK!
"OO이는 여섯 살 오빠(언니)니까 아기보다 의젓하게 굴어야지?"
의외로 이게 먹히는 경우가 많아 신기하다.

아직 대화가 안 되는 15개월 아기는 주로 소리 지르는 걸로 감정을 표현한다. 결혼식장 등에 데려갔다가 사람들이 손뼉 치는 타이밍엔 자신도 소리 지르며 손뼉을 친다. 그런데 가끔 흥이 넘치면 다른 이들이 조용할 때도 소리를 지른다.
아이가 소리 칠까 봐 자리를 벗어나려 할 때 한 어르신이 이를 만류하며 전해준 말이 있다.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내는 소리는 울음소리도 소음이 아니다."
물론 이는 아기의 소리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당사자의 배려가 전제돼야 한다. 다만 아이가 민폐를 끼칠까 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부모에게는 이 같은 한 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된다.
사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가 좀 소리를 질러도 크게 항의받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말은 또 달랐다. 아이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짜증 내거나 무섭게 노려보는 어른들이 간혹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의 안녕을 위해서는 당분간 아빠가 언제나 같이 다녀줘야겠다.

원래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어른들에게 보호 본능과 돌봄 행동을 자극하기 위해 설계된 'DNA의 명령'이라고 보기도 한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미소를 나누는 것만으로 어른들도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한다.
아기의 미소를 '정서적 보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인이 자신을 보고 웃어주면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급급하지만 아기가 웃어주는 건 순수하게 "당신이 좋아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심리에 강력한 보상을 준다는 것이다. 특히 서로에게 웃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 한국의 어른들이기에 아기 웃음에 그렇게나 쉽게 무장해제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는 손을 흔들고 미소 짓고 소리를 지르며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정작 같이 다니는 부모는 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혹시 누군가에게는 아이의 손짓과 소리가 무례나 민폐로 비칠까 염려하는 마음이 항상 깔려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이런 부담에서 좀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아기가 동네에 흩뿌리던 활기도 줄어들어 아쉬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