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27주차 > 월령별 육아 난이도 체감의 맹점

지난해 딸이 태어나고 첫 한달 동안 밤잠을 설쳤다. 3시간마다 밥 달라고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주변의 육아 경험자들에게 하소연하니 '배부른 소리'라며 웃었다. 그들은 "애가 누워있을 때가 편하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일만 남았다"며 지레 겁을 주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요즘에도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꼭 육아의 '난이도'가 올라간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이가 커가면서 그동안 익숙해진 패턴이 달라지기에 순간적으로 이를 난이도 변경으로 착각할 뿐이다. 같은 게임의 '하드 모드'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한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처음 갓난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건 '의도 파악'이었다. 보통 배고프거나, 졸리거나, 아플 때 운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웃으면서 잘 있다가도 갑자기 기습처럼 울음을 터뜨릴 때도 있다. 이른바 '맥락 없는 울음'이다. 어느 순간부터 울음의 이유를 찾아내길 포기했다.
아직 13개월인 딸은 말을 못 하지만 이제 자기 의사 정도는 표시한다. 지퍼백 안의 고무줄을 원하면 지퍼백을 가져와서 빨리 열어보라고 보챈다. 화면이 잠긴 스마트폰을 들고 와 활성화해보라며 아빠 머리를 찍는다. 졸릴 땐 자신을 업어서 재우라며 앉아있는 아빠 등 뒤에 엎어져 귀에 대고 외마디 소리를 질러댄다.
이만큼 큰 게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젠 점점 '사람 취급'을 해줘야 하니 당황스럽기도 하다. 밥 먹을 때 반찬도 자기 취향대로 고르는 경향이 생겼다. 선호하지 않는 장난감을 건네면 냅다 바닥에 집어 던진다. 그나마 옷은 아직 아빠가 골라주는 대로 입는데 조만간 패션 취향까지 생긴다면 어린이집 등원 준비가 좀 더 힘들어질 것 같다.

1년 전에 비해 부모가 주의해야 할 영역이 달라진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산후조리원에서 갓 나왔을 땐 혹여 자다가 엎어져서 숨을 못 쉬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했다. 이유식이 조금이라도 덩어리진 상태면 목이 막힐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기가 격하게 울다가 잠시 숨을 멈추면 부모도 같이 호흡이 막혔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영아 하임리히법 영상을 돌려보며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했다. 아기 변 상태를 살펴보고 냄새를 맡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과였다.
이젠 홈캠으로 아이가 엎어져 자는 모습을 봐도 괜찮다. 적어도 스스로 고개를 돌리며 잘 수 있어서다. 좀 덩어리가 져서 식감이 있는 음식을 오히려 선호한다. 맛이 없는 음식은 알아서 뱉거나 손가락으로 입에서 끄집어내 바닥에 던져준다. 이제 대변은 너무 묽지 않은지만 점검하고 넘어간다. 밤에 깨지 않고 통잠을 자는 것도 큰 복인데 이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고마움을 잊고 산다.
육아를 기록으로 남기다 보니 "예전이 편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흔히 과거가 미화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긍정성 편향'이다. 뇌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서 안정감을 유지하려는 습성이다. 힘겨웠던 군 생활을 추억하는 직장인 같은 사례다. 또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훨씬 빠르게 소멸하는 것도 원인이다. 1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를 힘들게 만든 요인 중 일부는 분명히 사라졌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롭게 나타난 어려움만 체감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난 직후에는 육아 유튜브를 많이 찾아봤다. 단기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들의 모든 지침을 금과옥조처럼 여길 수는 없다. 아이는 시시각각 변하고 매뉴얼에 없는 돌발 상황은 언제든 일어난다.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는 일반론이 우리 아이에게는 예외 사항일 수도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항상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최근에는 갑자기 '등반 취미'가 생겼다. 의자를 타고 올라가 식탁 위에서 뛰어노는 아찔한 장면이 가끔 연출된다. 침대 주변을 둘러놓은 안전 펜스를 혼자 넘어가 떨어지며 부모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갑자기 육류를 먹지 않고 채소와 김, 계란만 먹기도 한다. 해결책이 정해진 건 아니다.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솔루션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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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전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의 영상을 떠올려본다. 이들은 준비해온 전술만 선보이는 일반인들과 다르다. 꾸준히 상대방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움직임에 맞춰 유연하게 자신의 전략과 방향을 수정한다. 처음 겪는 상대방의 공격에도 쉽사리 뇌정지 상태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만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는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학생이 될 테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어려움과 새로 생기는 어려움이 섞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선 미리 공부하고 섀도복싱을 해봤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1년 동안 느꼈다. 차라리 언제 어떤 문제가 나타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함께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갖춰놓는 게 보다 나은 부모의 자세일 것이다. 그리된다면 새로운 육아 도전과제들이 나타나도 탄식하며 "예전이 좋았다"고 뇌까리는 '못난 아빠'는 최소한 벗어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