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21년 2월19일. 경북 구미에서 세 살배기 딸을 수개월간 방치해 숨지게 한 22세 여성 김모씨가 검찰에 넘겨졌다. 단전된 집에서 최소 3개월가량 방치된 끝에 숨진 A양은 외할머니 석모씨(당시 48세)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다. '친모 아동학대 살해'로 끝날뻔했던 이 사건은 A양이 김씨가 아닌 석씨 딸이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면서 반전을 맞게 된다. 검찰은 석씨가 자신과 비슷한 시기 출산한 딸(김씨) 아이와 자기 아이(A양)를 바꿔치기했다고 봤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석씨가 끝까지 출산을 부인하면서 사라진 김씨 아이 생사는 물론 행방까지 미제로 남게 됐다.
2년여 동안 5번에 걸친 재판과 검경 수사로 입증된 사실은 석씨 둘째 딸 김씨의 방임 행위뿐이었다. 김씨는 2018년 3월30일 오후 12시56분 병원에서 3.485㎏ 여아 B양을 낳았지만 어떤 이유로 바뀐지 알 수 없는 모친 석씨가 낳은 A양을 자신의 딸(B양)로 알고 키웠다. 그러다 2020년 8월10일 김씨가 집을 나가면서 방치된 A양은 같은 달 중순 기아와 탈수로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 검사 결과 숨진 A양과 석씨 간 친자관계 확률은 99.9999% 이상이다. 석씨가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출산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한때 국과수 검사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5번 유전자 검사에서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와 사실상 오차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다만 A양 친부는 석씨 남편이 아니었다. 석씨 내연남 2명도, 딸 김씨 전·현남편인 사위들도 모두 A양 친부가 아니었다. 경찰은 출산 추정 시점 전후로 석씨와 연락한 남성들은 물론 석씨 집 근처 택배기사들 DNA까지 채취해 약 100여건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으나 끝내 A양 친부를 밝혀내지 못했다.
A양을 딸인 줄 알고 길렀으나 실은 이부자매였던 김씨는 A양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아동복지법 위반 등)로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김씨가 상고하지 않으면서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석씨는 자신이 낳은 A양과 딸 김씨가 낳은 B양을 바꿔치기하고 반미라 상태로 발견된 A양 시신을 유기하려 한 혐의(미성년자약취·사체은닉미수)로 1·2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석씨가 둘을 바꿔치기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석씨의 사체은닉미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핵심 혐의인 '아이 바꿔치기'(미성년자약취)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석씨가 A양과 B양을 바꿔치기한 방법과 그 시기, 범행동기, B양의 행방 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석씨가 2018년 3월31일 오후 5시32분부터 4월1일 오전 8시17분 사이에 B양이 태어난 병원에서 둘을 바꿔치기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검찰은 '아이의 체중 변화'와 '벗겨진 식별띠'를 핵심 증거로 내세웠다. 3월31일 3.460㎏이었던 아이 몸무게가 하루 만에 3.235㎏로 줄었다는 것. 또 4월1일 오후 5시12분 병원이 촬영한 사진에서 아이 우측 발목에 채워져 있어야 할 영아 식별띠가 벗겨져 있던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생아의 경우 출생 후 3~4일 동안은 태변과 수분 배출로 출생 직후보다 몸무게가 5~10% 줄어드는 점을 짚었다. 영아 식별띠 관련해선 해당 병원 간호사가 "식별띠가 분리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 계속 분리되면 카트에 붙여놓는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더 면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검찰은 또 4월2일 진행한 신생아 채혈 검사에서 병원에 있던 아이 혈액형이 김씨(BB형)에게선 나올 수 없는 A형으로 나온 점도 바꿔치기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법원은 6개월 미만 신생아에게선 혈액형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는 만큼 유죄 근거로 사용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아이 바꿔치기 시간'으로 적시한 3월31일 오후 5시32분은 구미 한 기업에 재직하던 석씨의 당일 퇴근 시간, 4월1일 오전 8시17분은 석씨의 출근 시간이다.
31일 오후 7시쯤 남편·사위 등과 함께 산부인과에 도착한 석씨는 오후 8시쯤 남편 등과 함께 아이를 신생아실로 데려다줬다. 이후 남편과 병원을 나선 석씨는 오후 8시30분쯤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샀다. 이에 따라 석씨의 범행 가능 시간은 31일 오후 8시30분 이후로 한정되는 셈. 그러나 검찰은 파기환송심에서도 이 시간 석씨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대법원은 해당 시간에 석씨가 병원 신생아실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간호사 증언에 따르면 신생아실 출입 가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다. 이 시간 외엔 아이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는다. 간호사들은 31일 오후 9시부터 1일 오전 9시까지 3시간 간격으로 아이들에게 수유도 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별다른 추가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석씨가 딸보다 먼저 출산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검찰은 석씨가 2018년 1월27일 퇴사했다가 2월26일 재입사한 이유가 '출산 준비' 때문일 것으로 봤다. 석씨가 재입사 후인 2018년 3월6일 조퇴, 7일 결근한 점을 근거로는 출산 시기를 그 무렵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또 2018년 1~3월쯤 석씨 몸이 불어 평소보다 큰 치수의 옷을 입고 다녔다는 증언과 석씨가 회사 PC로 '출산 준비' '셀프 출산' 등을 검색한 점, 온라인으로 육아용품을 다수 주문한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석씨가 출산 임박 시점에 굳이 재입사했다는 게 쉽게 설명되지 않고, 나머지도 석씨 출산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일축했다.
범행동기도 끝내 오리무중이다. 1심 재판부는 석씨가 김씨가 낳은 B양보다 자기가 출산한 A양을 더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둘을 바꿔치기했다고 판단했다. 2심은 석씨 범행동기를 알 수 없으나 미성년자약취죄에선 범행동기가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별도 판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약취죄를 가리기 위해 석씨 범행동기에 대해 충분한 심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 석씨가 딸(A양)과 손녀(B양)를 바꿀 정도로 애정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만약 석씨가 딸(A양)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석씨가 외도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바꿔치기했다는 주장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며 '무죄 취지'가 아닌 '심리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검찰이 추가 증거를 제시해 입증할 경우 유죄 판결도 가능하다는 것. 검찰은 석씨 회사 생활 등 행적, 산부인과 간호사·수사 경찰 증인신문을 통해 추가 증거 확보에 열을 올렸으나 결과적으로 입증에 실패했다.
검찰은 석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을 석씨가 끝까지 입을 다물면서 결국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여아들을 바꿔치기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