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사이트 홍보 좀" 그 사람, 경찰이었다...'박제방' 잡은 위장 수사

최문혁 기자
2026.06.07 08:45

[베테랑]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성폭력수사3팀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61만건(2025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사진=제미나이.

"제 얼굴에 합성된 나체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 경기 수원 한 경찰서에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사진이 퍼진 곳은 이른바 '박제방'. 텔레그램에서 특정인의 신상정보나 성 착취물 등 불법 촬영물을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채널이다. 그동안 텔레그램 '박제방'은 익명성과 해외 서버를 무기로 수사망을 피해왔다.

사건을 맡은 경기남부청 사이버성폭력수사3팀도 운영자 추적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국제 공조를 통해 확보한 계정 정보는 타인 명의 대포폰이었고, 접속 기록도 VPN(가상 사설망)을 이용한 해외 IP로 확인됐다.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전형적인 사이버 범죄 수법이었다.

결국 수사3팀은 '신분 위장 수사'를 택했다. 담당 수사관인 권모 경사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로 신분을 속여 텔레그램 범죄 현장에 숨어들었고 직접 박제방 운영자 A군(17)에게 접근했다. 권 경사는 "박제방은 불법 도박사이트와 유심 판매업체 등을 홍보해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다는 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권 경사가 도박사이트 홍보를 의뢰하자 A군은 홍보비를 입금하라며 별도 계좌번호를 전달했다. 수사팀은 대화 내용으로 추적한 정보를 이용해 울산의 한 모텔을 특정했다. 팀원들은 직접 울산으로 내려가 모텔 CCTV를 확인하고 A군 검거에 성공했다.

A군 검거 이후 곧바로 수사를 확대했다. 텔레그램 특성상 방을 삭제하면 증거 인멸이 쉽고 공범들이 도주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A군 진술과 메신저 대화 내역을 통해 중학교 동창인 B군(18)과 C군(18)까지 잇따라 검거했다. 이들은 A군과 함께 또다른 박제방을 운영했다.

이들이 운영한 박제방은 총 4개다. 전체 구독자 수는 1만명을 넘는다. 이들은 회원수를 앞세워 불법 도박사이트와 대부업체, 유심 판매업체 등을 대화방에서 홍보해주고 수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군은 박제방 2개를 운영하면서 주거지에 금고를 마련해 700만원 상당의 골드바와 현금 약 1100만원을 보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최근 청소년보호법과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명예훼손)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알아주지 않아도…범인 검거가 가장 큰 보상"
A군(17)이 운영한 텔레그램 '박제방' 채널 프로필 캡쳐./사진제공=경기남부경찰청.

텔레그램은 'N번방', '박사방' 사건 이후에도 각종 사이버 범죄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VPN을 통한 해외 IP 우회 접속과 타인 명의 계정 생성 등 수법이 고도화됐다.

이 때문에 사이버 수사관들은 경찰 신분을 숨기거나 다른 인물로 위장해 직접 범죄 현장에 숨어든다. 박제방 운영진 검거에 성공한 수사3팀은 지금도 신분을 위장해 제2, 제3의 박제방을 추적 중이다.

수사3팀은 사이버 수사 경력 15년 이상의 팀장과 보이스피싱, 여성청소년범죄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팀원 4명으로 구성돼있다. 수사 특성상 성과가 외부에 알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터뷰도 익명으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범인을 검거하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자 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팀장 정모 경감은 팀의 강점으로 '다양성'을 꼽았다. 정 경감은 "신종수법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이버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수사기법이 요구된다"며 "컴퓨터 전문가 4명이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