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라이프라인(Lifeline)은 28초마다 한 통씩 전화를 받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앤드류 무어 라이프라인 이사회 이사는 청소년 자살 예방 현장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호주에서는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힌다. 실제 15~24세 사망자 4명 중 1명은 자살로 목숨을 잃을 정도다.
무어 이사는 "호주의 전체 자살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청소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며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건강 문제뿐 아니라 가족 갈등, 약물·알코올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 심리적 상처가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라이프라인의 주요 서비스는 '위기 전화 상담'이다. 호주 전역에 42개 거점을 두고 24시간 상담 전화를 받는다.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전화를 받고,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 정신건강 서비스나 경찰, 소방 등에 연계한다. 호주에서 시작된 라이프라인 모델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31개국으로 확산됐다.
라이프라인이 위기 개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경청'이다.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건네기보단 상대방이 충동적인 순간을 넘길 수 있도록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틸리니 페레라 라이프라인 인터내셔널 대표는 "상담원이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지시하기보다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한 뒤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인간적 연결'은 기술로 대체되기 어렵다. 페레라 대표도 최근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민을 AI(인공지능)에 털어놓는 현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AI에 과의존할 경우 잘못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고 곁에 누군가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
페레라 대표는 "아이들이 AI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라이프라인은 자살 유가족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무어 이사는 "자살 유가족은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 속에서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유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애도와 회복 과정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