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스쿨-자살없는 학교
머니투데이는 올해 마약, 도박, 자살 등이 없는 맑은 학교 만들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전세계적으로 높습니다. 청소년 자살 사망률도 최근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우울 증상을 호소해도 '사춘기'로 치부되면서 말할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위기에서 구할 방법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머니투데이는 올해 마약, 도박, 자살 등이 없는 맑은 학교 만들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전세계적으로 높습니다. 청소년 자살 사망률도 최근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우울 증상을 호소해도 '사춘기'로 치부되면서 말할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위기에서 구할 방법은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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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자녀의 자살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자책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우린 늦었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 네덜란드 '113 자살예방센터'(113 Zelfmoordpreventie)에서 만난 엘리아스 발트 박사는 심리부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녀의 죽음을 둘러싼 질문과 죄책감을 유족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또 다른 청소년의 죽음을 막기 위한 단서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다. 심리부검은 자살로 사망한 사람을 잘 알았던 유족과 친구 등을 심층 면담해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을 재구성하는 조사 기법이다. 네덜란드는 청소년 심리부검을 국가 차원에서 수행하는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인 113은 최근 5년간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청소년 자살 301건 중 28%에 대한 심리부검을 완료했다. 발트 박사는 "유년 시절 트라우마, 성과에 대한 압박이나 완벽주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한 자살 모방 행위 등 청소년 자살의 주요 원인을 심리부검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부터 국내에서도 청소년 심리부감이 실시된다. 심리부검이 자살 예방을 위한 핵심 대책으로 주목받으면서 정부는 기존 성인을 대상으로만 진행되던 조사를 청소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교육부·성평등가족부·경찰청 등은 내년부터 청소년 심리부검을 재개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지난 3월 체결했다. 정부는 청소년 심리부검을 본격적으로 재개해 자살 위험 신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예방 정책에 활용할 방침이다. 그동안 성인 대상 심리부검은 꾸준히 진행됐다. 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성인 자살 사례 1602건을 조사했다. 반면 청소년 심리부검은 교육부가 2015~2022년 약 30건을 진행한 뒤 예산과 부처 간 역할 문제 등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에 업무협약을 맺고 역할을 명확하게 나눴다. 복지부는 면담 도구와 조사 지침을 개발한다. 교육부는 학생 자살 관련 자료를, 성평등가족부는 학교 밖 청소년의 심리상담 기록 등 자료를 제공한다. 경찰청은 유족 연락처와 수사 관련 자료를 지원할 예정이다.
호주 시드니 서부의 마운트 드루잇 기차역에서 내려 걸어서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기관 '헤드스페이스(Headspace)'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이다. 건물 안쪽이 아닌 역사를 빠져나가면 바로 앞에 초록색 '헤드스페이스' 간판이 보였다. 처음 찾는 청소년들도 길을 헤매지 않도록 접근성을 높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유치원처럼 알록달록하게 장식한 접수처가 눈길을 끌었다. 아버지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온 10대 청소년도 긴장하기보다 편안한 모습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드스페이스는 호주 정부가 2006년 설립한 국립 청소년 정신건강재단이다. 전국 175개 지역에서 12~25세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10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대면 서비스를 이용했다. 정신건강 상담은 물론 △신체·성 건강 △진로·취업 △알코올·약물 오남용 문제까지 한곳에서 지원한다. 가장 큰 특징은 '낮은 진입 장벽'이다.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의 크기를 따지기보다 일단 찾아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출 청소년과 다문화가정 청소년, 성소수자, 농어촌 청소년 등 처한 환경이 다른 만큼 위험 요인과 필요한 지원도 달라져야 한다. "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박홍재 호주 웨스턴시드니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을 하나의 집단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정부나 의료기관 중심으로만 설계하는 자살 예방 정책도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와 호주 웨스턴시드니대에서 16년간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한 박 교수는 여러 복지기관과 긴밀히 협력하며 호주의 복지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실천론'을 가르치며 헤드스페이스, 라이프라인을 포함해 병원과 NGO(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복지 현장에 학생들을 실습 보내고 있다. 환경이 다른 만큼 해외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한국 사회의 현실에 맞는 '한국형 자살 예방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한국과 호주는 입시 경쟁이나 사교육 구조 등 사회적 요인과 청소년 생활 방식 등에서 차이가 크다"며 "해외 제도가 잘 작동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고 한국 상황에 맞게 재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 라이프라인(Lifeline)은 28초마다 한 통씩 전화를 받습니다. " 호주 시드니에서 만난 앤드류 무어 라이프라인 이사회 이사는 청소년 자살 예방 현장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호주에서는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힌다. 실제 15~24세 사망자 4명 중 1명은 자살로 목숨을 잃을 정도다. 무어 이사는 "호주의 전체 자살률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청소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며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건강 문제뿐 아니라 가족 갈등, 약물·알코올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 심리적 상처가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라이프라인의 주요 서비스는 '위기 전화 상담'이다. 호주 전역에 42개 거점을 두고 24시간 상담 전화를 받는다.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전화를 받고,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지역 정신건강 서비스나 경찰, 소방 등에 연계한다. 호주에서 시작된 라이프라인 모델은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31개국으로 확산됐다.
"요즘 너무 힘들다. " 민정(22·가명)이 처음 그 말을 꺼낸 건 부모도, 학교도 아니었다. 익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였다. 민정은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괴롭힘에 시달렸다. 우울감은 깊어졌고 여러 차례 극단적 시도를 할 정도에 내몰렸지만 부모나 담임교사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 SNS에 글을 남겼다. 댓글이 달리고 공감을 받을 때마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시물의 수위는 높아졌다. 그는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나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울감에 빠진 청소년에게 SNS는 일종의 안식처이자 탈출구로 자리잡았다. 현실에서 꺼내기 어려운 감정을 털어놓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공간엔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위로의 언어 사이로 자해 방법이 공유된다. 자해나 자살 시도를 경쟁하듯 전시하는 일도 적잖다. SNS가 청소년 자살 위험을 증폭시키는 매개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X(엑스·옛 트위터) 검색창에 '#우울'을 검색하자 힘든 감정을 털어놓은 게시물 사이로 자해 사진들이 섞여 나왔다.
"앞으론 디시인사이드에 글 안 쓰고 학교도 잘 다니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 말을 믿은 게 너무 후회돼요. " 서연(가명)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버지 김씨는 여전히 그 온라인 공간을 떠올린다. 딸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곳, 하루 수십 개의 글을 올리며 외로움과 우울을 쏟아냈던 곳, 극단적 시도를 부추기거나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별다른 제지 없이 올라오던 곳이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서연은 활발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딸이었다. 김씨는 "개성이 강했고 남한테 인정받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다"며 "팝송을 즐겨 듣고 자작시를 쓸 정도로 예술적 감각도 뛰어났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2020년, 코로나19(COVID-19)로 학교생활이 멈추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온라인 수업이 이어졌고 확진자 격리 생활까지 겪은 뒤 교실로 돌아왔을 땐 친구들 사이에는 이미 무리가 형성돼 있었다. 김씨는 "그때부터 딸이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했다. 이 무렵부터 서연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라서 그래. " "정신과 기록이 있으면 좋은 대학 못 가. " 청소년 시절 극심한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던 A씨(30·여)가 당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했을 때 들었던 대답들이다. 우울과 불안 증세를 가졌던 A씨는 과거 여러 차례 극단적 시도를 했다. 지난달 서울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A씨는 "그때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을 지조차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A씨의 우울 증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말다툼 이후 따돌림을 당하면서 학교에서는 점점 '투명인간'이 됐다. 물리적 폭력이 없는 따돌림은 어른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A씨는 "담임 선생님도 굳이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며 "점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됐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중학교 입학 후 받은 심리검사에서는 심각한 우울 증세가 확인됐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치료 권유가 아니었다. A씨는 "교무실에 불려가 '어떻게 좋은 대학에 가려고 그러느냐', '이런 건 솔직하게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극단적 시도를 한 청소년 상당수가 반복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고도 낙인 우려나 무관심 등으로 제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의 핵심은 위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10일 대한의학회지(JKMS)에 따르면 2015~2022년 8년 동안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살 시도·자해 환자 4452명 가운데 24세 이하 청소년·청년은 1445명(32. 5%)이다. 김태한 서울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등 공동 연구팀이 이들을 추적 관찰한 결과, 청소년·청년층의 2개월 내 응급실 재방문율은 7. 1%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25~40세 성인의 재방문율(5. 8%)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 차례 위기를 겪은 이후에도 다시 자해·자살 시도가 반복될 만큼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청소년기 자살 시도 등 위험 신호가 치료나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극단적 시도로 목숨을 잃은 청소년의 상당수는 생전 위험 신호를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