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인 1999년 7월 16일,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됐다. 감방 천장에 달린 환풍구를 통해 탈옥한 지 2년6개월(907일) 만이다. 탈옥 후 6차례나 경찰을 맞닥뜨린 신창원은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번번이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900여일 동안 신창원 체포에 동원된 경찰 인력만 97만명에 달했고, 이 중 57명은 그를 놓친 책임으로 파면·해임·전보 등 조치를 당했다.
463만장의 수배 전단이 전국에 뿌려진 가운데 신창원의 도주극은 한 가스 수리공의 제보로 막을 내렸다. 사회와 영구 격리된 그는 2011년과 2023년 자살 시도를 했으나 모두 실패해 현재는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 중이다.
1967년 5월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난 신창원은 열 살이 채 되기도 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는 가정폭력을 당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출을 밥 먹듯 한 그는 결국 중학교 진학 3개월 만에 퇴학당했고, 15세 때인 1982년에는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경찰은 신창원을 훈방 조치했으나 그의 부친은 아들을 소년원으로 보내버렸다.
이후 감옥을 들락날락하던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공범 1명이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하면서 강도치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창원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신창원은 서울구치소를 거쳐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994년 11월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됐다. 바람 잘 날 없던 구치소 때와 달리 교도소에서는 5년간 모범수로 지내던 그는 곧 탈옥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신창원의 탈옥기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연상케 했다. 그는 우선 목공 작업장에서 쓰던 15㎝ 길이 쇠톱 2개를 신발 밑창에 숨겨 수감방으로 빼돌렸다.
신창원은 이 쇠톱으로 두 달간 매일 20분씩 화장실 천장에 달린 환풍구 쇠창살(직경 1.8㎝)을 자르기 시작했는데, 톱질 소리가 새어 나갈 것을 우려해 교화방송이 나오는 저녁 시간대만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가로 32㎝, 세로 28㎝에 불과한 환풍구를 통과하기 위해 3개월 만에 몸무게를 80㎏에서 65㎏까지 감량하기도 했다.
1997년 1월20일 새벽 3시쯤, 마침내 쇠창살 2개가 절단되자 신창원은 탈옥을 감행했다. 환풍구를 통해 수감동 밖으로 빠져나온 그는 곧장 교도소 내 교회 신축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철담장 아래 땅을 파서 공사장 안으로 진입한 신창원은 밧줄과 철근을 이용해 3m 높이 콘크리트 담을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그가 철통 보안으로 유명했던 부산교도소를 탈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30여분에 불과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 탈옥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 환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당국 설명이다.
탈옥한 신창원은 인근 농가에서 옷과 자전거, 흉기 등을 훔쳤다. 이후 시내로 나가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기사를 위협해 현금 1만원을 빼앗기도 했다.
이후 신창원은 2년 6개월간 전국 4만여㎞를 돌며 도피 행각을 이어나갔다. 빈집털이로 수억원대 생활비를 마련했고, 훔친 차를 타고 다녔다. 도피 기간 총 6차례 경찰을 맞닥뜨렸지만 가스총과 쇠파이프에 맞고도 멀쩡한 맷집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번번이 도망쳤다.
당시 신창원 체포에 동원된 경찰 인력은 97만명에 달한다. 그를 놓친 책임으로 파면·해임·전보 등 징계를 받은 경찰도 57명이나 된다. 경찰이 뿌린 수배 전단은 463만장, 탐문한 업소와 은신 용의처는 2100만여곳이다. 현상금도 당시 최고액인 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경찰도 흔적을 찾지 못하던 때, 결정적 제보가 들어왔다. 가스 수리공 김모씨가 출장차 방문한 전남 순천 한 아파트에서 신창원을 목격했다는 것. 육군 정보부대 하사관(부사관) 출신인 김씨는 평소 남다른 눈썰미를 갖고 있었다.
김씨는 여성 혼자 산다는 집에 남자가 있었던 점, 두 사람이 부부로 보이는데 결혼사진은 없고 운동기구만 이상하리만치 많았던 점, 그리고 남자가 계속 모자를 쓴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점 등을 의심 이유로 들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수십명 인력을 투입해 신창원을 체포했다. 검거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그는 "편해요, 그냥"이라고 덤덤하게 답한 채 연행됐다. 신창원 검거에 기여한 김씨는 포상금 5000만원을 받고 경찰 특채로 채용됐다.
신창원의 도주 기간이 길어지며 한때 '신창원 신드롬'이 확산하기도 했다. 이 신드롬은 검거 이후에도 계속됐다. 신창원을 의적으로 칭하며 추앙하는 팬카페가 생기는가 하면 검거 당시 그가 입었던 티셔츠가 유행이 됐다.
체포된 신창원은 100여개 혐의가 적용돼 기존 무기징역에 더해 징역 22년6개월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한 신창원은 2011년 8월 교도소 독방에서 돌연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2023년 5월에도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현재는 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