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선수들이 힘이나 피지컬이 좋으니까 연습 배팅 때 홈런을 빵빵 칠 줄 알았는데..."
메이저리그(MLB)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을 때 흔히 범하는 오류다. 빅리거들이 힘만 셀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전히 국내 야구계에도 기술은 메이저리거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큰 오산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해민(36·LG 트윈스)에게도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는 야구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국내 무대에서 풍부한 경험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나아가 2023년에도 WBC에 나선 적이 있지만 이번 WBC와는 크나 큰 차이점이 있었다. 3년 전엔 조별리그만 뛰어 상대한 선수들의 클래스가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3년 전엔 일본을 제외하고는 세계 수준이라고 할 만한 팀들과 붙어보지 않았기에 30년 가까이 야구를 했던 박해민에게도 이번 대회는 새롭게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됐다.
박해민은 1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SSG 랜더스와 2026 KBO 시범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WBC에 다녀온 소회를 밝혔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저마이 존스(디트로이트)와 안현민(KT)까지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3경기, 단 한 타석의 기회만 얻었던 박해민이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경기를 나가서 뛰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거기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저에게는 너무 값진 경험이었다"며 "도미니카 선수들 연습하는 걸 보면서 또 느낀 것도 많이 있었다.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디펜딩 챔피언' 일본에도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LA 다저스),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 등 빅리그 톱클래스 선수들이 있지만 그동안 자주 부딪혀본 상대였지만 17년 만에 2라운드에 진출해 만난 도미니카공화국은 완전히 달랐다.
선발 라인업의 모든 타자가 단일 시즌에 20홈런을 때려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 타선은 한국 투수들을 괴롭히며 0-10 콜드게임 패배를 안겼다. 예술 같은 제구를 앞세운 류현진(한화)의 계산적인 투구에도 낮게 떨어지는 공까지 걷어 올리며 안타를 생산하는 데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물며 이러한 수준의 타자들을 처음 상대하는 투수들이 당황하며 고전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타자로서 보기에도 도미니카 타자들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다만 박해민이 감탄한 건 단순한 파워만이 아니었다. "도미니카는 모든 타자들이 머릿속에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도미니카 선수들은 힘과 피지컬이 좋으니까 연습 배팅 때 홈런을 빵빵 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게 치지 않더라"고 말했다.
철저한 계산이 담겨 있는 훈련을 한다는 것. "자신들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가 치고자하는 방향으로 치더라.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나 (후안) 소토, (매니) 마차도 같은 선수들이 그렇게 쳤다"며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도 무조건 세게 멀리 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구나라는 것에 대해 야수들끼리 대화를 했고 그래서 도미니카 선수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된 연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신민재(30)는 주니오르 카미네로(23·탬파베이)에게 매료됐다.
"인상적이었던 건 카미네로다. 프리배팅 치는 걸 봤는데 타구가 날아가는 게 혼자 골프공을 치는 것 같더라. 진짜 잘 치더라"며 "나이를 듣고 한 번 더 놀랐다. 대단한 것 같다. 30대 중반으로 봤다"고 웃었다.
성숙한 외모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빼어난 실력과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어 가는 걸 보면 전혀 어린 타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카미네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지난해에야 풀타임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154경기 45홈런 110타점을 때려내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신성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6경기에서 타율 0.350(20타수 7안타) 3홈런 7타점 5득점, 출루율 0.409, 장타율 0.850, OPS(출루율+장타율) 1.259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타티스 주니어 등과 도미니카 타선을 이끌며 준우승에 기여했다.
유일하게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돌아온 송승기(24)는 한번쯤 꼭 던져보고 싶었다면서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는 뜻을 같이 했다. 송승기가 반한 건 한국을 꽁꽁 묶었던 도미니카 선발 크리스토퍼 산체스(30·필라델피아)와 일본 투수 이토 히로미(29·니혼햄)였다.
KBO리그에서만 활약하던 선수들에게 WBC는 야구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소중한 무대가 됐다. 박해민은 "야구는 진짜 어렵고 계속 끝까지, 은퇴하고도 배워야 되는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많다고) 배울 게 없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선수라도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겸허한 자세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