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54), 김병현(47)의 성공으로 한때 뜨거웠던 한국 야구 유망주들의 미국 직행 열풍이 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1990년대 후반 박찬호, 김병현의 성공으로 시작됐던 한국 야구 유망주들의 미국 도전은 수많은 실패 속에 사그라들었다. 대신 KBO 리그를 거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하는 트렌드가 정착했다. 2013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39·한화 이글스)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풍조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시 유망주들이 KBO 리그 대신 미국으로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광주일고 우완 에이스 박찬민(18)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지난 24일(한국시간) "한국 출신 우완 유망주 박찬민과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계약금은 120만 5000달러(한화 약 18억 원)다. 당초 국제 드래프트 머니가 부족했지만, 금액 마련을 위해 마이너리그 우완 투수 2명을 트레이드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타뉴스 취재 결과 2027 KBO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 후보로 꼽히는 하현승(18·부산고)과 엄준상(18·덕수고)도 ML 구단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하현승은 국제 드래프트 머니가 많은 특정 팀이 거론될 정도로 적극적인 관심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박찬민까지 최근 5년간 벌써 13명째다. 고교 졸업 후 직행한 사례만 따져도 5년간 7명에 달한다.
갑자기 왜 다시 직행을 선택한 선수들이 늘어난 것일까. 국내외 스카우트들은 과거와 다르게 좋아진 정보 접근성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선수와 구단 모두 서로를 파악할 루트가 더 늘었다는 소리다. KBO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선수들은 한 번쯤 메이저리그 신분 조회를 받는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전체 1순위로 꼽히는 한국 선수들은 다른 국가 동 나이대 선수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과거와 달라졌다. 최근 중·고교 유망주들은 직접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면서 최신식 야구 이론을 직접 받아들이고 있다. KBO 상위 라운드 지명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유망주 A는 "요즘 야구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추세다 보니, 아무래도 다들 관심이 많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들이 많아서, 좋은 영상이나 기술이 나오면 친구들끼리 바로 공유한다. 나에게 적용해보고 싶은 이론이 있으면 코치님들께도 물어본다"라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 해외 진출을 막는 현실적 장벽으로 작용했던 모교 지원금 제한 규정도 사실상 억제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KBO 규약 제107조 제4항에 따라 외국 프로구단과 계약한 선수의 모교에는 5년간 지원금이 중단된다. 통상적으로 KBO 구단들은 입단한 선수를 배출한 최종 졸업 학교에 계약금 7%, 중학교에 3%를 야구용품으로 지원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1라운드 포함 3~4명만 배출해도 지원금은 2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연습구 1박스가 110만 원에 달하는 현 상황에서 절대 무시 못 할 금액이다.
그 탓에 그동안 미국으로 떠난 선수 중 일부는 계약금의 일정 금액을 모교에 기부하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유망주를 향한 ML 구단들의 관심이 커지고 계약 규모도 비례해 올라가면서 이 부분은 자연스레 해결됐다. 물론 미국 진출 후 실패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하다. 다만 과거와 달리 이제 미국행은 치기 어린 도전이 아닌 현실적인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그저 더 좋은 곳에서 야구를 배우고픈 선수들의 마음을 더 이상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 아마야구 관계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고교 감독 B는 이러한 흐름에 "KBO로서는 유망주 유출에 대한 우려와 리그 흥행을 이유로 댈 것이다. 미국에 간 선수들이 실패한 사례도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남아서 성공해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됐을 거란 보장도 하긴 어렵다. 이젠 우리로서는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해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아이들] 또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유망주, 한국야구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
① '5년 새 13명' 다시 시작된 韓 유망주 미국 직행, 이젠 현장도 '막을 이유'가 없다
② "야구 더 잘하고 싶어요" 추신수·최지만만 웃었던 미국 직행, 2년 페널티에도 유망주들은 왜 태평양 건넜나
③ KBO 컴바인·계약금 현실화·2년 유예 폐지…韓 유망주 미국행, 막을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