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2시간 벽 돌파가 다시 떠올리게 한 깨지지 않는 기록들

정희돈 스타뉴스 전문기자
2026.05.28 03:00
최근 육상 관계자들과의 대화에서 남자 마라톤의 '2시간 벽' 붕괴가 화두에 올랐고,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런던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를 기록하며 이 벽을 돌파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사인 볼트의 남자 100m 9초58,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의 여자 100m 10초49와 200m 21초34 등 깨지지 않는 기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육상에서도 이봉주의 남자 마라톤 한국기록 2시간7분20초와 이영숙의 여자 100m 11초49가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시대의 환경과 복합적인 요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로 평가된다.
사바스티안 사웨가 지난 4월 2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26 런던 마라톤 우승 후 세계 기록을 적은 신발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최근 오랜만에 은퇴한 육상 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과거 육상 종목을 담당하면서 황영조와 이봉주가 이끌던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를 함께 지켜봤던 일부 지도자와 원로 기자들까지 한데 모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과거의 스타 선수들, 1990년대 한국 육상의 추억, 그리고 세계 육상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의 대화는 한 달 전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든 역사적인 장면으로 모아졌다. 바로 남자 마라톤의 '2시간 벽' 붕괴였다.

"결국 인간이 해냈구나."

한때 인간이 절대 넘지 못할 것처럼 여겨졌던 마라톤 2시간 벽은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한계 중 하나였다. 42.195km를 두 시간 안에 달린다는 것은 오랫동안 인간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까지 있었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런던마라톤에서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59분30초를 기록하며 마침내 공식 경기 사상 최초로 2시간 벽을 돌파했다. 인류 스포츠 역사에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기록은 결국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은 그래서 스포츠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표현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스포츠의 역사는 인간 한계에 대한 도전의 역사였다. 과학의 발전과 훈련 방법의 진화, 장비 혁신은 인간 능력을 계속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려 왔다. 최근 스포츠 과학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졌다. 선수들의 심박수와 젖산 수치, 수면 패턴과 회복 속도까지 데이터화되고 AI 분석과 생체역학 연구까지 동원된다. 탄소 플레이트 러닝화는 마라톤 기록을 수 분 단축시키는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스포츠는 단순한 재능과 근성의 영역을 넘어 거의 정밀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깨지지 않는 기록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기록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하나의 시대와 인간 능력의 극한, 그리고 때로는 논란과 의혹까지 함께 담고 있다.

우사인 볼트가 특유의 '번개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남자 육상 100m 세계기록이다.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세운 9초58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볼트는 인간이 아니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후 수많은 스타 스프린터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9초58은 멀게만 느껴진다.

과거에는 몇 년마다 기록이 경신됐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의 단거리 선수들조차 9초60 벽을 넘기 어려워하고 있다. 올해 남자 100m 시즌 최고 기록은 지난 4월 보츠와나의 콜렌 케비낫시피가 세운 9초89다. 여전히 우사인 볼트의 세계기록 9초58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간의 순수한 스피드는 사실상 생리학적 한계에 접근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여자 육상에서는 더 오래된 기록들이 살아남아 있다. 미국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 세운 여자 100m 10초49와 200m 21초34는 40년 가까이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많은 육상 팬들은 당시 서울올림픽에서 화려한 손톱과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압도적인 기록으로 시대를 상징했던 그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녀가 39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한 이후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약물 의혹이라는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세계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현대 선수들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기록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육상뿐 아니라 스포츠 전체로 시선을 넓혀도 비슷한 사례는 많다. 수영과 역도, 사이클 등에서는 특정 시대의 기록들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기록은 기술 혁신 덕분에 깨졌고 어떤 기록은 오히려 기술 규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기록은 단순한 개인 능력만이 아니라 시대의 환경과 과학, 장비, 제도, 그리고 경쟁 구조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인 셈이다.

한국 스포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육상에서 가장 상징적인 기록 중 하나는 여전히 이봉주의 남자 마라톤 한국기록 2시간7분20초다.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이 기록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만 해도 한국 마라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황영조와 이봉주로 이어지는 한국 마라톤의 전통은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수층 감소와 생활체육 중심 변화, 국제 경쟁 심화 속에서 그 기록은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진다.

이봉주. /사진=뉴시스

여자 단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 100m에서는 이영숙이 지난 1994년 세운 11초49 기록이 30년 넘게 깨지지 않고 있다. 남자 100m는 김국영이 잇달아 자신의 한국기록을 경신하며 시대를 바꿨지만 여자 단거리 기록은 여전히 과거의 숫자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일부 종목에서 오랫동안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 존재했던 훈련 환경이나 기록 측정 환경 등을 함께 봐야 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1980~90년대 세계 육상계는 냉전 시대 국가 시스템 스포츠의 영향 아래 있었고 약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록 자체보다 기록에 도전하는 인간의 정신이다. 스포츠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가 바뀌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벽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는 데 있다.

마라톤 2시간 벽도 한때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해냈다. 지금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기록들도 언젠가는 새로운 세대에 의해 다시 쓰일 가능성이 있다.

그날 은퇴한 육상인들과의 대화 끝에 모두가 공감했던 말이 있었다.

"결국 스포츠는 인간의 꿈이 만들어가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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