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지정 및 고시하는 국가핵심기술이 M&A(인수합병) 시장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핵심 기술의 유출을 막아야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의견과 M&A 시장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500킬로볼트(kV)급 이상 전력케이블 시스템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전선 시장의 상황과 기술의 범위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며 "추가적인 검토를 거칠 계획으로, 이르면 6월에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 보장 및 국민 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 기술을 말한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9조에 따라 지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 안보 및 국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관련 제품의 국내외 시장 점유율, 해당 분야의 연구동향 및 기술 확산과 조화 등을 고려한다.
500킬로볼트(kV)급 이상 전력케이블 시스템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PEF(사모펀드)가 보유한 대한전선의 매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 최대주주는 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대한전선 매각 작업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이미 IMM PE가 중국 기업과 매각을 위해 접촉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IMM PE 관계자는 "대한전선 매각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은 없다"며 "일각에서 중국에 매각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은 해외 이전이나 매각, 수출 과정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에선 해당 기술의 수준, 민감성, 매입 대상자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정해진 기간(45일) 안에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 기간은 기술적인 심사 등 과정에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경우 연장될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해외 매각을 추진할 경우 꼭 된다, 안 된다 문제가 아니라 지분율을 조정하거나 영업 부문을 분리하는 방안 등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 보호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원천적으로 해외 매각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M&A 시장에선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기업의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외 매각 과정에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매각 절차나 속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 매각이 배제될 경우 인수 후보군이 제한되며 매각 대상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매각을 검토중인 두산공작기계 역시 국가핵심기술과 관련이 있다. 이미 국가핵심기술로 지정 및 고시된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 및 제조 기술' 등을 두산공작기계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공작기계 매각 작업이 가시화 될 경우 국가핵심기술 문제가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현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베어링PEA)를 비롯한 글로벌 PEF(사모펀드) 등 5~6곳이 관심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M&A 업계 관계자는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선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해당 산업과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보편화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할 경우 M&A 시장에 대한 무리한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