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어느 분야든 갑을(甲乙)관계가 존재한다. 최근 대표적인 갑을관계가 판매사와 제조업자다. '갑'인 초대형 판매사(금융사)는 압도적인 판매망을 활용해 판매사에 상품(펀드) 판매를 의존해야 하는 '을'인 제조업자(자산운용사)보다 우월적 지위를 행사한다. 결국 판매사의 우월적 지위는 고객 중심 경쟁을 제한해 판매사 이익만 챙기는 불합리한 판매 관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공모펀드 시장이 대표적이다. 공모펀드 판매 비중이 절대적인 판매사들이 고객이 아닌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소위 '돈되는 상품'을 판매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지난 10월말 기준) 공모펀드 판매잔액 중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의 판매 비중은 95% 수준에 달해 절대적이다. 각각 증권사(54.5%)와 은행(40%)이 시장을 양분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들 판매사들이 상대적으로 저위험 장기 펀드보다 레버리지ETF(상장지수펀드)나 ELF(주가연계펀드), DLF(파생결합펀드) 등 고위험 단기 펀드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만기가 1년 안팎으로 짧은 고위험 단기 펀드들이 만기가 5년, 10년 이상으로 긴 안정적인 장기 적립식 펀드에 비해 잦은 환매와 가입이 가능해 그만큼 여러 번 판매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매사들이 특정 기간 얼마나 거래됐는지를 보여주는 회전율이 높아 수익성에 도움이 되는 상품만 선호한다는 얘기다.
"공공성을 띄는 금융사들이 민간 식당처럼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아무리 좋은 펀드를 만들어도 판매사에서 회전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노골적으로 회전율이 높은 상품을 요구해 회의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러니 올 하반기 금융업계 최대 악재 중 하나인 사모 DLF의 대규모 원금손실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들 상품을 판매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평균 만기가 4~6개월 정도로 짧은 DLF를 '판매수수료 2·3모작 상품'이라고 강조하며 직원들에게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공모펀드 시장의 만성적인 침체도 불합리한 판매 관행이 주범으로 꼽힌다. 은행들이 돈 벌이에만 혈안이 돼 펀드 손실을 키우는 우를 범하면서 "펀드로 돈 벌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공모펀드 시장 침체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은 물론 판매사 등 이해당사자의 공모펀드 시장 활성화를 위한 불합리한 판매 관행 개선 방안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