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뉴욕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급락한 여파가 국내 대형 반도체주로 번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하락세를 보인다. 전쟁 장기화 우려와 터보퀀트발(發) 수요 둔화 불안이 겹치면서 시장이 메모리 수요 감소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한 영향이다. 그러나 증권가는 관련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주가 반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31일 오전 11시17분 현재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3900원(2.21%) 내린 17만2400원, SK하이닉스는 3만5000원(4.01%) 내린 83만8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5거래일, SK하이닉스는 4거래일 연속 약세다.
이날 삼성전자가 다음달 2일 약 14조58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혔지만, 주가는 여전히 약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약세는 간밤 미국 뉴욕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급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원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데다 터보퀀트발 메모리 반도체 장기수요 감소 불안감까지 겹쳤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은 9.88%, 샌디스크는 7.04%, 인텔은 4.50%, ASML은 3%, 엔비디아는 1.40%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4.23% 하락했다.
지난 25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충격을 준 구글의 터보퀀트는 AI(인공지능) 추론에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을 6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알고리즘이다. 양자기술로 데이터를 압축하는 방식으로 AI 연산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시장은 터보퀀트 기술이 상용화되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도체 투자 심리가 급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터보퀀트가 오히려 AI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발행한 병목 현상을 해결해주는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구글 터보퀀트 논문에 참여했던 한인수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추론에 쓰이는 메모리가 줄어 더 어려운 업무를 수행한다거나 남은 메모리를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오히려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터보퀀트가 AI 생태계를 활성화 시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오히려 더 확대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터보퀀트가 메모리 반도체에 악재가 아닌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증권업계는 지속적으로 "터보퀀트로 인한 메모리 수요 악화 우려는 과하다"고 주장해왔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1990년대 인터넷 도입 초기에 이메일·디지털 문서 확산으로 종이 사용량 감소가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PC·프린터·이메일 사용 증가와 웹 문서 출력 확대가 맞물리며 12년간 종이 사용량이 급증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며 "이는 효율 개선이 수요 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총수요를 확대시키는 리바운드 효과의 대표적 사례로 AI 역시 동일한 경로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주장은 힘을 받아 지난 27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마이크론이나 샌디스크 등 반도체 주가가 반등하기도 했다. 이날 발생한 여진은 전쟁 불확실성과 반도체주 고점 우려 등이 복적으로 작용하면서 투자심리가 취약해진 상태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지 않더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밝히면서 반도체주는 소폭 반등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장중 한 때 16만7500원, SK하이닉스는 80만6000원까지 떨어졌으나, 현재 17만원, 83만원대까지 회복했다.
증권가는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20만전자, 100만닉스일 때 설정한 목표치가 과도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중동 긴장 고조 및 구글 터보퀀트 이슈로 인한 단기 주가 조정을 유의미한 매수 기회로 판단된다"며 "2분기 메모리 반도체 주문은 오히려 더 강화돼 기존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는데, 이는 AI 메모리 수요가 중동 전쟁과 같은 외부 변수에도 흔들림 없는 구조적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