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으라면 꿇을게"…'휴보 아빠' 오준호의 독한 리더십

대전=류준영 기자
2015.06.17 05:50

DRC 우승 이끈 오준호 KAIST 교수 "코리아 휴먼 로봇 강국? 지원 시스템조차 없어"

오준호 KAIST 교수가 로봇 휴보를 개발한 이끈 팀 카이스트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KAIST

"오죽하면 교수가 학생에게 무릎을 꿇었겠어요, 그만큼 다들 고집과 의지가 강했던 거죠."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휴보(HUBO)'를 개발, 전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인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우승기를 거머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준호 교수(기계공학)는 '애제자'들을 이끌기 위해 '독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

지난 5~6일(현지시각), 오 교수와 휴보 개발을 주도한 30여명의 학생들로 이뤄진 팀 카이스트(Team KAIST)는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포모나 전시장에서 개최한 DRC에서 미국(12개팀)·일본(5개팀)·독일(2개팀) 등 로봇 선진국을 포함, 총 24개팀의 출품작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올라섰다.

KAIST팀은 지난 2004년 개발한 휴보의 6번째 개량 모델인 'DRC-휴보 플러스(+)'(키 180cm, 무게 80kg)를 앞세워 이번 대회 우승트로피와 상금 200만 달러(약 22억원)를 받았다.

16일 오전 대전 KAIST 본관 제1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는 대회 출전 후일담을 듣는 자리로 꾸며졌다. 여기서 오 교수는 '팀 카이스트'를 이끈 지도력을 묻는 질문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 대답했다.

KAIST에서 오 교수는 '독재자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돌격대'같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오 교수는 말했다. 휴보 개발에 최근 합류한 KAIST 권인소 교수(전기 및 전자공학부)는 "(오 교수 연구실은)우리 연구실과 문화가 많이 달랐다. 마치 특수부대원이 훈련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 교수 연구실 회식은 1년에 한 번 연말에 하는 게 전부다. 점심시간은 20분, 연구원들은 햄버거처럼 대충 때우는 음식,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데 익숙해져 있다.

팀 카이스트 소속의 한 학생은 간담회에서 오 교수의 연구방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교수님은 모든 시간을 개발에 집중하기를 원했어요. 밤 10시, 교수님과 회의를 했다면 48시간 혹은 72시간이 주어지고, 저희는 잠을 자든지 샤워를 하든지 그 연구만 생각해야 했어요. 결과가 별로라면 교수님은 주어진 시간에 연구에 집중하지 않은 결과로 생각했죠.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빡빡하게 써가며 연구했어요."

◇ "지도자는 팀을 위해 자기 것도 버려야…이는 자존심과 관계없는 일"

그런 오 교수가 학생에게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이유였던 것일까. 오 교수는 "한국에서 사제지간이란 부모와 자식같은 관계일 것"이라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상위 1% 천재들이 카이스트를 다녀요. 특징이라면 고집이 세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죠. 로봇 연구는 최소 1~3년 정도 걸려요. 방향을 잘 못 잡으면 되돌리긴 힘든 결과가 나오죠. 그래서 제가 "속는 셈 치고 3일만 이 방향대로 해보자"라고 말했어요. 무릎이라도 꿇으면 그렇게 하겠나라고 했고, 실제로 무릎도 꿇었죠. 그게 소문이 났던 것 같네요."

그러면서 오 교수는 "팀 전체를 위해 지도자는 자기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며, 이는 자존심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팀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무릎 꿇고 익스큐즈(excuse)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거죠."

이어 오 교수는 사람들은 훌륭한 인재들이 모였을 때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산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이 더 많죠. 그것이 100배 더 어려워요. 이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하기도 하죠. 실패한 팀들을 보면 강력한 리더십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자기 고집만 피우면, 100% 실패하기 마련이죠. 고집 센 사람을 꺾기 위해선 인사이트와 설득하고 이길 수 있는 논리 등을 갖춰야 해요."

팀카이스트가 로봇 휴보를 시연해보이고 있다/사진=KAIST

오 교수는 2001년부터 연구비 지원 없이 학생들과 연구에 몰두했다. "1997년, 일본 자동차기업 혼다가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 '아시모'(ASIMO)를 공개했을 때, 우리도 저들을 따라잡아 보자고 마음 먹었고, 연구비 지원 없이 무모하게 나섰죠."

그 결과 2004년 12월, 휴보를 최초로 세상에 내놨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5년 6월 6일. 휴보는 세계 최고 기량을 지닌 로봇으로 이름을 올렸다.

◇ 연구비 지원도 없이 시작한 무모한 도전 "체계적 지원 필요"

오 교수는 휴모노이드 개발이 앞으로 더 큰 발전을 이루기 위해선 정부로부터 통합된 R&D(연구·개발) 프로젝트로 인정받아 안정적인 예산확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선 코리아하면 휴먼 로봇 강국으로 알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라는 게 존재하지 않죠. '2족 보행로봇 안정화에 대한 연구' 등 부분적이고 학문적인 이름 형태로만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는 휴머노이드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어요."

오 교수는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해 교내에서 창업한 로봇 판매 기업 '레인보우'가 올린 수익금과 산업부로부터 받은 로봇 부품 개발 지원비를 연구비로 충당해 왔다.

오 교수와 KAIST팀의 다음 도전 무대는 '우주 로봇공학 경연대회'이다. 이 대회 개최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지만, 일단 준비는 한다는 게 오 교수의 계획이다. 오 교수는 "DRC 순위 3위팀이 모두 참여할 것으로 안다"며 "화성을 배경으로 험준한 산악지형이나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미션을 수행하는 난위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대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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