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까이서 연주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죠? 한 번만 제대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 국악에 대한 부담은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인터뷰 후 연주를 들려달라는 기자의 즉석 부탁에 김해숙 국립국악원장(61)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야금을 펼쳤다. 직접 작곡한 곡이라며 들려준 짧은 연주는 그가 어디서고 자신을 ‘연주가’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대로 설명됐다.
국립국악원은 신라 시대부터 시작된 국악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의 명맥을 잇는 조직이다. 형식적으로는 그저 중앙부처 산하 기관이지만, 1500년 역사의 맥락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 조직을 이끄는 김 원장은 평생 가야금 명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2014년 국악원 최초의 여성 수장이 됐다.
“우리 음악은 서양과 달리 화성이 아니라 리듬을 사용하는 단선율 음악이에요. 그만큼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죠. 지금 현대음악에서 사용되는 리듬을 조선조의 음악 구조에서 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죠.”
김 원장은 지난 2014년 취임한 뒤 최근 1년 임기로 재임명됐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이 국사, 국어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국악은 외면해 안타깝다”며 “요새 아이들이 빵과 치즈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한식이 주식인 것처럼 음악도 우리 것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조상들이 일제의 탄압 속에서 어렵게 지켜낸, 우리의 얼이 담긴 국악이 외면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 국립국악원은 우리 국악을 관장하는 곳이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릅니다.
▶ 한국전쟁 중이던 지난 1951년 부산에서 개원했으니 광복 이후로는 64년 된 기관입니다. 하지만 1500년의 역사가 담긴 곳입니다. 신라 시대 국립 왕조 국악기관 ‘음성서’가 고려의 ‘대학서’, 조선의 ‘장학원’으로 이어졌죠. 국립국악원은 그 전통을 잇는 조직입니다.
- 우리 것 중 국악만큼 모르고 자라온 분야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국어나 국사는 의무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교육에 비중 있게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죠. 음악 선생님들은 대부분 서양음악을 전공하셨습니다. 10여 년 전 교육부에서 ‘예술강사’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국악을 전공한 특화된 예술강사들이 임시로 기용돼 학교에서 교육을 가르치다 보니 음악 선생님들이 국악 교육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제는 국악을 공부하려는 음악 선생님이 거의 없지요.
헝가리를 예로 들만 합니다. 헝가리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대적인 민요를 채집한 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3~4세부터 민요의 리듬을 교육받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음악을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나누어 교육하죠. 비전공자 아이들도 그들의 국악, 민요를 취미로서 배웁니다. 자국의 정서를 함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런 차이가 너무 아쉽죠.
- 국민들이 국악을 제대로 알기 위해 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3살짜리 손녀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서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바로 느낍니다. 아리랑 무대를 한 번 본 뒤에 그 아이가 집에서 “아리랑 아라리오”라며 손에 소품을 들고 노래를 따라 하더군요. 강강술래 무대를 보여줬더니 정말 예쁘다며 좋아하고, 민요 무대를 보여준 뒤에는 동요를 민요 투로 불렀습니다.
어릴 때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감수성이란 입맛과 같아 어릴 적에 느낌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은 한국말, 반찬은 김치를 먹으면서 음악만 서양 클래식을 듣고 있어요.
- ‘교양’의 한 품목처럼 클래식은 열풍이죠. 서양 음악만 익숙한 대중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우리나라 사람의 음악적 감성이 서양 음악에 가 있는데 그걸 부정할 수는 없지요. 감성은 도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국악의 뿌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한 결과가 바로 ‘퓨젼’입니다. 국악원 내 창작악단에서 이 일을 하고 있지요. 관현악단, 재즈 가수, 기타리스트, 현대무용수 등 다양한 서양 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길게 살아봤자 100년인데 그 안에 변화무쌍한 일들을 다 겪는 것처럼, 지구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기에 우리 전통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 교육계와 함께 할 과제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네. 국악원도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어린이극을 무대에 올리는 데 중점을 두었죠. 2016년에는 어린이극을 매주 토요일마다 상연하려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라도 엄마와 아빠 선생님이 함께 와야 하죠. 국민을 위한 국악 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요.
2016년에는 또 초·중·고등학교 국악단이나 국악 동아리 등을 국악원 무대에 초청하려고 합니다. 전부 어른들 혹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국악 무대를 올렸는데 이제는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국악원 내에도 공유됐습니다.
김 원장은 취임 초기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 현대화라는 목표를 두고 이를 공연물로 훌륭하게 선보이는 데 집중했다. 2014년에는 음악극 ‘공무도하’를, 올해는 파리에서 ‘종묘제례악’을 무대에 성공적으로 올렸다. 국악원의 ‘풍류사랑방’ 공연은 취임 이전 해 대비 횟수를 160%로 늘려 입소문이 꽤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