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합산규제와 갈라파고스

김세관 기자
2019.03.18 03:30

‘갈라파고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서쪽으로 1000㎞ 이상 떨어진 태평양의 화산 제도다.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어 독자적으로 생물들이 진화해 대륙과 다른 동식물들이 존재한다. 우리에겐 경제용어로 더 유명하다. 자신들만의 독자 규격·제도를 고집해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국내 유료방송 산업이 갈라파고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이미 유료방송 산업은 규제가 겹겹이 쌓인 업종으로 유명하다. 한술 더 떠 국회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부활 여부를 논의 중이다. 합산규제란 특정 사업자의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전체 시장의 3분의1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5년 3년 한시법으로 도입돼 지난해 6월 일몰됐지만 국회에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의 독과점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여전히 가입자 점유율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미디어 시장 트렌드와 동떨어진 규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시장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공룡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코드 커팅(유료방송 해지)을 가속화한 지 오래다. 플랫폼보단 콘텐츠 가치가 높아졌다. 이를 위해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를 추진하고, SK텔레콤이 지상파 합작 OTT ‘푹’에 이어 티브로드 합병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시장 변화에 따른 필연적 움직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만 합산규제 탓에 발목이 잡혀있다. 합산규제가 부활하면 KT는 어떤 케이블TV 사업자도 인수할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 다른 사업자들도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란 점이다. 이번 인수·합병으로 시장점유율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합산규제 부활은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거대한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해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 일고 있는 자발적인 산업재편을 가로막는 일이다. 정부도 유료방송 시장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합산규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오는 22일 국회는 또 한 번 합산규제 부활 여부를 논의한다. 국내 미디어 산업 체질을 바꿀 것인지, 갈라파고스로 만들 것인지 이제 국회의 선택에 달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