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약가를 40%대로 인하하는 내용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한 데 대해 국내 제약업계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신약 개발과 도입을 촉진하고 혁신 제약기업을 육성한다는 측면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많게는 판매 제품의 90%가량을 차지하는 제네릭의 가격 인하가 제약사의 위기를 부르고 결국 의약품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해 약가제도 개선방안(안)을 논의했다. 약가 개선안은 추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최종 확정되며, 내년 1분기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가장 주목받는 내용은 제네릭 가격 인하다. 복지부는 2012년 일괄 인하했던 약 중 오리지널(원조) 약가 대비 45%~53.55%인 복제약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약가를 내년부터 낮춰 최종 40%대로 인하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50% 이상, 내후년에는 45~50%에 해당하는 제네릭의 가격 조정을 시작해 각각 2028년, 2029년까지 40%대로 약가를 낮춘다. 정부는 제네릭 약가 개편에 따라 내년부터 연평균 2500억원씩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약제비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예외는 있다. 첫째, 제네릭이라도 △퇴장방지·저가·희귀의약품 △단독등재 △수급 불안정을 이유로 최근 5년 내 약가가 인상된 의약품 △기초수액제·방사성의약품 △산소·아산화질소 등은 약가를 인하하지 않는다.
둘째, 혁신성을 고려한다. 혁신형 제약기업 중 매출액 대비 의약품 연구개발(R&D) 비율이 상위 30%인 기업은 제네릭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68%까지 인정한다. 하위 70%는 60%로 차등을 둔다. 매출이 500억원 미만이지만 임상 2상 승인 실적인 3년간 1건 이상이면 55%까지 제네릭 약가를 책정해준다.
셋째, 수급 안정에 기여했는지 반영한다. 원료를 직접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의 경우 오리지널의 68%로 제네릭 약가를 설정하기로 했다. 다만, 이렇게 약가를 더 주는 기간은 혁신성은 3년(추가는 더 논의), 수급 안정 기여는 5년(추가 5년)으로 제한한다.
제약업계는 신약 개발을 도모한다는 정부 정책 방향에는 동의하는 모습이다. 국내 제약사 3곳 중 1곳은 완제 의약품 생산액이 10억원 미만으로 소규모인데, 이는 비교적 높은 제네릭 약가 때문이란 지적이 있었다. 제약사가 난립하며 경쟁만 심해지고 정작 신약 개발에는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랐다. 정부가 R&D 투자, 신약 개발 노력 등을 감안해 약가를 책정하는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 제약기업' 육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바라본다.
반면, 정부의 '혁신성'과 '수급 안정 기여'라는 가산기준이 '그림의 떡'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원자재 가격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줄면 다수 제약사가 인력을 내보내거나 채용하지 않고 R&D 비용을 깎아 '혁신 트랙'을 더욱더 타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기간 제한으로 결국 제네릭은 오리지널의 40%대로 약가가 수렴된다는 점도 제약사의 '도전'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제네릭이 없는 제약사는 없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제약사의 전문 의약품은 200~300개로 오리지널은 10% 안팎에 그치며 나머지는 제네릭이다. 이번에 타깃이 되는 '2012년 인하 제네릭'은 4500여개로, 소규모 제약사는 물론 국내 상위 제약사도 매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네릭을 통제하기 위한 임상자료 공유 제한, 원료의약품 등록 제도 등이 연구·품질 관리 능력이 없어 시장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제약사만 정리하는 느낌이었지만 이번 약가 개편은 거의 모든 제약사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신약, 일반의약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의 매출 비중이 큰 제약사는 그나마 괜찮겠지만 다수가 '생존 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이 참여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 발표 후 입장문을 내고 "약가 산정기준을 개선안대로 대폭 낮출 경우 기업의 R&D 투자와 고용을 위한 핵심 재원이 줄어들어 신약 개발 지연, 설비 투자 축소,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2012 년 정부의 일괄 약가 인하(평균 인하율 14%)에 대한 학계의 심층분석 결과에 따르면 건보 재정이 일시적으로 절감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기업의 비급여 의약품 생산 비중 등이 늘어나 국민의 약값 부담은 13.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건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으로서 제네릭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개선방안의 확정에 앞서 산업계의 합리적 의견 수렴과 면밀한 파급 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이번 개선안은 국내 제약산업 재편이라는 실제 목표를 두고 약제비 문제, 환자 접근성 개선을 단지 명분으로 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약가제도 개편은 밀실에서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 대중의 지지와 공감대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