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가 감사원에 보건복지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등 의정 갈등 구도가 재점화한 분위기다. 국내 중장기 의사 인력 규모를 따지는 추계 방식을 놓고 이견이 발생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최대 50가지의 변수를 의사 인력 추계에 반영하는 해외 사례를 들어 국내 추계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앞서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의 모형에 반영된 변수는 임상 활동 의사 수와 신규 인력 유입·유출 등 10가지 정도로 알려졌는데, 이와 달리 보다 세부적인 변수를 적용하는 해외의 추계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해외 일부 국가는 만성질환 유병률을 비롯해 의사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선호 등 미래 예상되는 근무 환경 변화 추세까지 추계에 반영한다.
미국의 경우 보건의료자원서비스청(HRSA)이 '보건의료 인력 수급 시뮬레이션 모델'(HWSM)을 구축, 의사 공급에 대해 전일제 환산 지수(FTE) 기반의 기준연도 인력 수, 연령·성별·전문과별 퇴직 등을 반영한 이탈 확률과 주(州) 간 면허 이전·근무지 이동 확률 등을 구체적으로 적용한다. 특히 FTE는 각 의사가 환자 진료에 투입되는 시간을 반영하는 개념으로, 국내 의료계도 FTE 기반 수급 추계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요 모델 역시 비만·흡연 여부 및 만성질환 등 개인 건강 상태, 보험 유형, 외래·입원·응급실 등 진료 제공 장소, 진료 전문과목별 전국적 부족 현황 등의 변수가 반영돼 공급과 수요를 합해 최소 20가지는 넘는 가변 요인이 추계에 쓰인다. HRSA는 의료비 지출 패널조사(MEPS)를 활용해 전문 과목별 연간 의사 방문 횟수와 입원 발생 확률을 예측하는 방식을 개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네덜란드 의료인력수급추계기구(ACMMP)는 80개 의료 직종에서 각 몇 명을 교육해야 하는지를 추계한다. 총 80~100명의 전문가가 모여 연간 약 네 차례에 걸쳐 의료 수요·직종·교육 과정의 변화와 발전 현황 등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며 3년마다 정부에 적정 인력 산출 규모를 보고한다.
공급 변수로는 △연차별 교육·수련 인원 △워라밸 선호 등 미래 의사의 근로 시간 변화 추세가 반영된 예상 FTE 조정치 등이, 수요 변수에는 △만성질환 유병률과 건강행태 변화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생산 효율성 변수 등을 고려해 약 50가지의 공급·수요 변수가 추계에 적용된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소속 교수는 "한국도 2027년 의대 정원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결론 도출 전 추계위 차원의 논의를 수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어갔어야 했다"며 "추계위에서 다루는 데이터도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최대한 다양하게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추계위원으로 참여한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SNS를 통해 "우리나라는 전 국민 단일 건강보험 체계를 갖추고 있고 모든 의사의 급여 행위가 빠짐없이 기록됨에도 추계위에서 실제 검토할 수 있는 자료는 기존 연구에서 아주 약간만 더해진 수준이었다"며 "많은 불확실성과 한계를 내포한 데이터로는 그 정도 수준의 결과물밖에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 수'를 둘러싼 의정 간 대립 구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추계 결과에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돌입하는 한편, 감사원에 복지부 대상의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의협은 "감사원이 의대 정원 증원 과정의 위법·부당성을 지적했음에도 복지부는 아무런 시정 없이 2027년도 정원 결정을 강행하고 있다"며 "위법하고 부실한 추계위에서 수립된 의대 증원 정책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