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처방전 그대로" 병원 안 가고 약 리필?...법 추진에 의·약사 갈등 우려

홍효진 기자
2026.03.12 15:39

與, 만성질환자 대상 '처방전 리필제' 도입 추진
약사들 "환자 안전·편의성 위한 선택"
의사들은 반대 입장…"외려 안전 위협, 책임 환자에 전가"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단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성분명처방 저지 궐기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스1

만성질환자에 한해 의사가 이전에 처방한 의약품과 같은 제품을 약사가 다시 조제·판매할 수 있도록 한 '처방전 리필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입법에 속도가 붙은 성분명 처방에 이어 의료계 반대가 큰 처방전 리필제가 연이어 발의되면서 의·약사 간 갈등도 커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최근 국회에 발의된 약사법 개정안에 대해 의사 직역 단체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약사가 의사·치과의사 처방전 없이 만성질환자의 기존 처방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현행법상 약사는 '재해 발생으로 사실상 의료기관이 없게 돼 재해 구호를 위해 조제하는 경우' 의사나 치과의사 처방전 없이 의약품 조제가 가능하다. 개정안은 재해 구호 목적 외에도 재해 발생 시 '만성질환자의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이전에 처방받은 의약품과 동일한 의약품을 조제·판매하는 경우'를 신설, 대상을 만성질환 대상으로 넓혔다. 처방 의약품 종류와 조제·판매량, 처방전 유효기간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처방전 리필제).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처방전 리필제는 미국·영국·대만·일본 등 해외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상태가 안정적인 환자가 보유한 약이 소진돼 추가 처방이 필요한 경우 병원 방문 없이도 약국에서 약을 타갈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이다. 약사계는 180일, 더 길게는 1년가량의 장기 처방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조제약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도 주장한다.

김위학 서울시약사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약물 보관 안전성과 의약품 폐기 등 장기 처방에 따른 여러 문제가 있다"며 "안정적 관리가 되는 환자도 병원을 굳이 방문해야 하는 비효율 문제도 있다. 한 번 처방받고 1~2회 리필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들은 외려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단 입장이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동일한 약만 처방받으면 될지, 다른 약이 더 필요한지 등에 대해 환자가 임의로 판단해야 한단 것"이라며 "환자 안전을 위한단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로 환자 편의성을 높였는데 리필제까지 도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도 덧붙였다.

노환규 의협 전 회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약사는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 혈압도 혈당도 잴 수 없다"며 "진료 없이 약사가 처방전을 재탕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분명처방 저지 궐기대회에서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의료계 반발이 큰 약사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의·약사 간 갈등을 키울 수 있단 우려가 이어진다. 앞서 지난해 대체조제 사후 통보 절차를 간소화한 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최근엔 의약품 명칭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한 법안도 추진 중이다.

특히 의협 등 의사 단체는 전날(11일) 성분명 처방 의무화 법안이 국회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안건으로 오른 것을 두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의사는 진단·처방, 약사는 조제·복약지도를 맡는 게 의약분업 대원칙"이라며 "성분명 처방 강행 시 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법안은 내달로 의결이 연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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