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 후보로 내정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60) 독일 국방장관의 독특한 이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의회 승인까지 받는다면 그는 EU 역사상 첫 여성 집행위원장이 된다.
28명의 EU 정상은 2일(현지시간)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의 후임으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을 차기 위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이달 중 유럽의회에서 과반 찬성을 받아 인준되면 오는 11월 1일부터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위원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목을 끈 그의 이력은 다름 아닌 7명의 자녀다. BBC는 "평균 출산율이 여성 1명당 1.59명에 불과한 독일에서 매우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노동부, 가족여성청년부 장관 등을 역임한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할당제, 남성 2개월 유급 육아휴직 등 진보 정책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는 '차기 메르켈'로 불리기도 했다. 200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발탁된 그는 중도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3년 독일 여성 최초 국방장관에 오르고 메르켈의 후계자로 꼽히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나, 2017년 이후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해 공개된 군 장비 부실 관련 보고서로 홍역을 치렀다. 해당 보고서는 2017년 말 기준 독일군에 배치 가능한 잠수함이나 대형 수송기가 하나도 없다는 내용을 담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실 그가 후보로 지명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 BBC는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이 집행위원장 후보 관련 초기 논의에서 거론됐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타협안이 무산되면서 그가 첫 번째 후보로 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래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회 제1당 독일 출신의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트 베버 대표 후보를 밀었으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강하게 반대하며 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후 중도진보 사회당(S&D) 계열 후보 프란스 티머만스로 의견이 모였지만 이탈리아와 폴란드·헝가리 등의 반대로 무산됐고, 이후 EPP 소속의 폰 데어 라이언을 마크롱이 추천하면서 일단락됐다.
메르켈 총리는 "폰 데어 라이엔이 기권 한 명을 제외하고 거의 만장일치로 선출됐다"며 "기권표를 던진 사람은 나"라고 밝혔다. 기권표는 메르켈 총리가 장관으로 발탁한 만큼 예의상 던진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폰 데어 라이언 후보 지명을 두고 "프랑스-독일 동맹의 결실"이라고 전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폰 데어 라이엔은 13살 때 독일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는 니더작센주(州)지사를 지냈으며,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 고위관료를 역임하기도 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노버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어린 시절과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어·프랑스어 등 능통한 외국어 실력을 지녀 국제무대에 나서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