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주도해 만든 투자회사 비전펀드가 연이어 투자실패를 기록한 가운데 실패 원인을 엿볼 수 있는 내부 증언이 나왔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6주마다 주요 경영진 75명이 참석하는 화상회의를 개최한다.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에서 일하는 참석자들은 각자 발굴한 투자대상(주로 스타트업)에 대해 손 회장 앞에서 발표한다.
이 회의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3명의 소식통은 "손 회장이 발표자를 칭찬하기도 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며 "동시에 끊임없이 바뀌는 세부 지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손 회장이 발표자를 어르고 달래며 회의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한번은 한 참석자가 중국의 트럭 배차 서비스인 '풀 트럭 얼라이언스'(만방그룹·滿?集團)에 대해 설명할 때의 일이다. 손 회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손 회장은 회사가 느리지만 안정적인 성장을 보인다는 설명에 대해 "너무 은행원 같다"고 비판했다.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위험하더라도) 빨리 회사를 키울 방법을 찾으라"며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을 바꿔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는 "손 회장의 전략은 무조건 '더 크게' 아니면 집에 가라는 식"이었다"고 했다. 손 회장이 3년 전 비전펀드를 설립해 실리콘밸리 투자를 시작했을 때부터 스타트업 창업자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기업가치를 부풀려 이익을 내는 방식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적어도 올해 초까지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무실공유업체 '위워크', 주문형 피자 업체 '줌', 차량공유 업체 '우버', 애견산책 서비스 '왜그' 등 비전펀드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흑자는커녕 적자 규모를 키우면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위워크 기업공개(IPO)가 실패하고, 상장한 우버 주가가 내림세를 그리면서 소프트뱅크도 7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 시카고대 경영대학원(BSB)의 스티븐 카플란 교수는 "기술 산업에 이렇게 많은 돈이 흘러든 것은 1999~2000년 이외에는 없었다"면서 "그 끝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기업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다 2000년대 초반 갑자기 붕괴한 '닷컴 버블'과 현 상황이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비전펀드가 무리한 투자를 하는 배경에는 회사 구조도 한몫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 주요 투자가 보유한 400억달러(약 46조6000억원) 규모의 비전펀드 지분은 모두 우선주로 연간 7%의 배당을 보장받는다. 이익을 내든 내지 못하든 매년 28억달러(약 3조2620억원)는 투자자에 줘야 한다는 얘기다. 비전펀드의 한 전직임원은 블룸버그에 "비전펀드는 잘되면 큰 이익을 얻도록 설계됐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참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