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이라고 해서 부모 학력만큼 (자녀 학력이) 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부모님 세대보다 (좋은) 대학에 가기 더 어려워진 상태이고, 사교육이 진짜 효용성이 있는 건지 생각해봐야 해요."
사교육 1위 기업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회장이 최근 모 유튜브 채널에서 남긴 말이다. 이 회사가 '사교육 이권 카르텔'로 지탄받아야 할지는 논외로 하자. 사교육에 죽도록 매달려봐야 부모보다 좋은 대학에 가기가 쉽지 않다니 뼈 때리는 조언인데 입시학원 오너의 발언이라 더 아이러니하다.
미국에선 (백인)자녀가 부모의 학벌을 넘기 어려운 상황이 우리보다 100년은 앞서 발생했다. 해법은 '더 높은' 장벽을 쌓는 것이었다. 1920년대 유대인, 가톨릭 신자가 늘어 앵글로색슨 개신교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대입전형에 '레거시 입학'(Legacy admission)을 도입했다. 대학 동문 등의 가족 관계를 바탕으로 특정 지원자를 우대하는 관행이다.
자연스레 백인과 부유층의 입학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 하버드대 레거시 입학 지원자 중 70% 이상이 백인이다. 1992년 US뉴스&월드리포트 순위 75개 대학 중 캘리포니아공과대학만 레거시 입학이 없었다. 이후 메사추세츠공과대와 존스홉킨스대, 애트머스대학이 폐지했지만 절대 다수의 사립대학이 유지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레거시 지원자만을 위한 입학 상담원을 고용하고 이들이 입시에서 탈락한 경우 다른 대학으로 배치하는 것까지 돕는다. 친분이 두터운 동문과 고액기부자 자녀를 지원하는 하버드대 'Z-리스트'가 대표적이다. 낮은 순위의 다른 학교에 1~2년간 등록한 후 전학생으로 다시 지원하게끔 '학벌 세탁'까지 권장한다.
차별에 민감한 미국에서 지금까지도 혈연관계 혹은 기부를 통한 '금권' 입학이 건재한 이유는 이들이 대학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 미국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졸업생의 기부금은 전체 기부금 중 27.5%에 달했다. 의회와 사법부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레거시 수혜자들도 이 관행의 든든한 지원자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의 판결(Students for Fair Admissions, Inc. v. President and Fellows of Harvard College)이 레거시 입학 폐지 논란에 불을 붙였다. 대학 입학 심사에서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affirmative action) 중 지원자의 인종을 고려해선 안 된다는 내용인데, 지난 45년간 유지해온 정책과 판례가 정면으로 뒤집히면서 반발이 거세다.
소수의견을 제시한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인종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인종이 끼칠 영향을 더 키우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도 "평등을 위해선 불평등을 인정해야한다"며 소수의견에 함께 했다.
후폭풍으로 지난 3일 미 교육부에는 하버드대학의 레거시 입학 관행을 조사하라는 진정서가 제출됐다. 성취 업적이 아니라 가족이 누구냐는 이유로 입학에 특혜를 주는 것은 1866년 민권법(현재 미국법 1981조에 성문화)에 따라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소수 인종에게 주는 지렛대가 위헌이라면, 금수저에게 주는 프리패스는 한 수 더 위헌적이다. 레거시 입학이야말로 미국 사회가 수십년간 "평등(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을 위해 인정한 불평등"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