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핼러윈에 갓 쓸까?"…케데헌 비웃던 부모도 열광[트민자]

윤세미 기자
2025.08.31 08:05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디즈니랜드에서 스티치와 릴로가 사자보이즈의 소다팝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사진=틱톡

넷플릭스는 2013년부터 수백편의 오리지널 작품을 선보였지만 대중문화 흐름을 뒤흔들 정도로 화제를 모은 적은 좀처럼 없었다. 역사가 짧은 만큼 '겨울왕국'이나 '바비'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아이콘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넷플릭스의 공동 창립자인 리드 헤이스팅스 회장은 CEO(최고경영자)였던 2021년 한 인터뷰에서 "가족 콘텐츠 분야에서 디즈니를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숙원이 4년 만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북미를 중심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면서다.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인기 캐릭터인 스티치가 사자보이즈의 소다팝에 맞춰 춤을 추는 소셜미디어 영상은 자못 상징적이다.

"K팝? 악령? 제목 극복하니 12번 보게 되더라"

"일단 제목부터 보세요. 악령 사냥꾼이라고요? 더구나 K팝이라고요? 이게 뭔가 싶었죠."

케데헌은 제목부터 미국인들에게 쉽게 가닿을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5명의 아이를 키우는 실비아 크루즈(41)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케데헌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거부감부터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케데헌을 12번 넘게 봤다고 한다. 아이들이 시청한 횟수를 합치면 30회는 족히 넘을 거란 설명이다. OST는 훨씬 더 많이 들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파리극장에서 열린 케데헌 싱어롱 이벤트에 참여한 팬들의 모습/AFPBBNews=뉴스1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6월20일 처음 공개된 케데헌은 10주 만에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넷플릭스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누적 조회수 2억3600만회를 넘으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극장에서 개봉한 싱어롱 버전은 단숨에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고, OST에 수록된 '골든'은 빌보드차트 핫100에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다. OST 수록곡 중 무려 4곡이 TOP10에 포함됐다.

케데헌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어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선 케데헌을 테마로 생일파티를 치르는 게 유행이 됐다. 올해 핼러윈(10월31일)엔 마녀와 프랑켄슈타인 자리를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꿰찰 판이다. 아마존과 테무 등은 케데헌 코스튬 판매를 시작하며 일찌감치 핼러윈 공략을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선 갓, 수건으로 만든 양머리, 김밥 등 영화에 등장한 한국 문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쏟아진다.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케데헌 코스튬/사진=아마존
케데헌에 나오는 수건 양머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시물/사진=틱톡
인기 비결은 시각적 쾌감과 중독성 있는 K팝

팬들은 케데헌의 인기 비결로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꼽는다. 그동안 익숙했던 디즈니나 지브리 풍의 영상과 달리 콘서트 조명이나 K드라마식 컷, 비디오게임 같은 액션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청자에게 시각적 쾌감을 준다는 평가다. 갓, 한복, 컵라면, 김밥 등 한국 특유의 문화 요소는 호기심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케데헌의 속도감 있는 전개 역시 인기 비결로 꼽힌다. 뉴저지주 클리프턴에서 두 딸을 키우는 멜리사 자로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과 많은 작품을 봤지만 대부분 '지루하다, 너무 느리다'면서 끝까지 보지 못했다"면서 "이 영화는 훨씬 빠르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빠른 데 익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케데헌 속 걸그룹 헌트릭스/사진=넷플릭스
케데헌 속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사진=넷플릭스

우정과 자기 수용 등 영화를 관통하는 보편적 주제 역시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싱어롱 상영회에 참석한 한 여성(28)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부모 입장에서 딸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접하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K팝 중독성 있는 OST도 인기 비결로 빼놓을 수 없다. 아울러 부모들에겐 아이와 같은 영화를 즐기는 게 유대감을 쌓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 과거 백스트리트보이즈나 엔싱크 같은 아이돌에게 열광하던 추억을 소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에선 케데헌을 비웃던 부모가 나중엔 자녀들보다 더 푹 빠진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들에 공감이 쏟아지고 있다.

케데헌을 비웃던 부모가 나중엔 자녀들보다 더 푹 빠진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사진=인스타그램
"케데헌, 넷플릭스 프랜차이즈 중추될 것"

글로벌 미디어 분석업체인 컴스코어의 폴 더가라베디언 애널리스트는 최근 비즈니스인사이더를 통해 "케데헌은 디즈니가 오랫동안 강조하던 가족 친화적 뮤지컬을 완벽하게 현대화한 작품"이라면서 "넷플릭스 프랜차이즈의 중추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디즈니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가족 콘텐츠 분야에서 넷플릭스가 케데헌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됐단 평가다.

WSJ은 할리우드에서 '분노의 질주' 같은 장수 시리즈들의 흥행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영화사들이 '마인크래프트' 같은 인기 원작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케데헌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을 통해 탄생한 작품임에도 단숨에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도 짚었다.

넷플릭스는 본격적으로 케데헌 프랜차이즈 확장에 나설 태세다. 케데헌 제작사인 소니픽처스와 케데헌 독점 판권을 가진 넷플릭스는 후속작 준비에 돌입하는 한편,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넷플릭스는 향후 실사판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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