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의 신임 일본 총리 선출로 일본 대외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총리 본인이 강경 보수파이기도 하지만, 중도 보수로서 자민당이 우경화되지 않도록 균형추 역할을 했던 공명당이 26년 만에 연정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집권 자유민주당이 새 연정 파트너인 우파 일본유신회와 발표한 연정합의서는 군비 증강을 시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아사히 등에 따르면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20일(현지시간) 연립정부 구성 합의와 함께 연립합의서를 발표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일본 헌법 제9조를 위해 양당이 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은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원히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해 항복한 후 유지된 조문인데, 2014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이 아니라 일본의 동맹이 공격받은 경우에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집단적 자위권을 앞세워 평화헌법 변경을 시도했다.
공명당은 평화헌법 개정은 신중히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일본유신회는 아예 평화헌법 조문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다는 헌법 제9조 제2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일본 3대 안보 문서를 신속히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2022년 12월 개정된 바 있는데, 적 미사일 기지를 공격할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번 연정합의서에는 국방비를 증액하고 차세대 전력원을 가진 잠수함 보유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다. 핵잠수함 보유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닛케이는 "지난해 공명당과 연립합의에서는 안보 정책에 관해 '미일 동맹의 억지력'과 '군축의 주도'를 병기하고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국'으로서 대처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이번 자민당-유신회 합의에서는 유일한 피폭국이나 군축 등의 어구는 보이지 않았다"고 짚었다.
자민당과 유신회는 한국의 국가정보원 같은 정보수집기관을 창설하는데도 합의했다. 현재 총리실 산하에 있는 내각정보조사실을 격상해 국가정보국을 만들겠다는 것. 양당은 또 외국세력의 간첩 행위 방지를 위한 법제를 신속히 정립하겠다고 했다. 모두 공명당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정책들이다. 사이토 테츠오 공명당 대표는 지난 17일 간첩 방지법에 대해 "개인의 권리, 인권 문제와 관련이 깊어 졸속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라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닛케이는 다른 분야 정책에서도 다카이치 총리의 보수적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나 외국자본의 일본 토지 취득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결혼 후 아내가 남편의 성씨를 따르는 부부동성 제도도 법으로 강제하겠단 입장이다. 이시바 시게루 전임 총리가 추진하고 공명당이 힘을 실었던 전국민 1인당 2만엔 현금지원 정책은 연정합의서를 통해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