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만 4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각각 2026년 신년사를 통해 종전 조건에 대한 극명한 이견을 드러냈다. 미국이 새해에도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당사국 간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0시 국영방송을 통해 발표한 신년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러시아군 장병을 치하하며 승리를 자신했다. 그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의 영웅들, 즉 '특별군사작전' 참가자들을 지지하려 한다"며 "우리는 여러분과 우리의 승리를 믿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쟁 대신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른다.
푸틴 대통령은 장병을 향해 "여러분은 조국의 땅을 위해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울 책임을 짊어졌다. 우리의 단결이 굳건할수록 조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미래가 결정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창조하며 세운 목표를 이뤄내고 오직 전진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지난해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특별군사작전과 승리를 직접 언급하며 러시아군의 결속을 강조했다. 이는 최근 미국 주도의 종전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러시아에 항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까지는 아니다"라며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연장할 뿐인 '약한 평화 협정'(weak peace agreement)에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의 종식을 원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종말은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지쳤다. 하지만 우리가 지쳤다고 해서 항복할 준비가 됐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어 "약한 합의에 찍힌 서명은 전쟁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나의 서명은 강력한 합의에만 놓일 것"이라면서 "지금 이뤄지고 있는 모든 회의, 전화 통화, 결정이 바로 이를 위한 것"이라고 덧붙었다.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영토 양보 등을 전제로 한 종전 협정에는 서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원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협상 타결 기대를 낮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줄곧 러시아의 돈바스와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통제권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하루 전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외교팀이 우크라이나, 유럽 주요 국가(영국·프랑스·독일)와 종전 및 평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며 새해에도 관련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미국이 종전 합의 기대를 높이려 하지만 두 당사국의 간극이 커 협정 타결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전날 푸틴 대통령의 관저를 공격한 드론(무인기) 영상과 지도를 공개한 뒤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강경 대응을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종전 협상을 피하기 위한 러시아의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포스트의 "푸틴의 '공격' 주장은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쪽이 러시아라는 것을 보여준다"라는 사설 제목을 공유하며 러시아의 주장을 일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가 종전 협상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공격에 집중하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