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 사는 맥스 카로자(20)는 어두운 방에 홀로 앉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연설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의 관심은 온통 트럼프가 "가장 뜨거운(hottest)"이란 단어를 사용할지에 쏠려 있었다. 예측시장 플랫폼 칼시에 트럼프가 연설에서 "가장 뜨거운"이란 단어를 말할 거란 데 베팅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트럼프가 "우리는 세계 어디보다 가장 뜨거운 나라"라고 말하는 순간 카로자는 두 주먹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이 베팅 하나로 64달러(약 9만원)을 벌었다. 이 장면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 미국에서 유명 인사의 말 한마디에 돈을 거는 이른바 '멘션 트레이딩'이 새로운 재테크이자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선거 결과나 금리 결정 같은 굵직한 사건의 향방을 가늠하는 거시적 수준을 넘어 특정 연설에서 어떤 단어가 나올지를 맞히는 '나노 단위의' 예측시장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멘션 트레이딩은 칼시와 폴리마켓 같은 예측 플랫폼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칼시의 멘션 트레이딩 규모는 지난해 1월만 해도 2만2000달러(약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최근 한 달 사이 1억1700만달러(약 1662억원)로 급증했다. 지난달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FOMC 기자회견을 대상으로 한 칼시의 멘션 시장에선 280만달러 넘는 베팅이 이뤄졌다. 경쟁 플랫폼인 폴리마켓도 비슷하다. 폴리마켓은 2021년 이후 600건이 넘는 멘션 베팅 상품을 열었는데 절반 이상이 지난해 나왔다.
멘션 트레이딩의 성장은 예측시장 전반의 팽창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련 규제는 완화 추세다. 예측시장을 감독하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최근 스포츠, 선거, 시상식 베팅을 제한하려던 조 바이든 전 행정부 방침을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은 칼시와 폴리마켓 고문을 맡고 있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역시 예측시장 진출 계획을 밝힌 상태다.
칼시와 폴리마켓은 정부 셧다운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관련 예측 상품을 발 빠르게 내놓으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용자들과의 상호작용도 활발하다. 두 플랫폼은 디스코드 채널 등을 통해 어떤 주제로 시장을 열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베팅 계약을 만든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지난달 "예측시장이 매우 흥미롭다"면서 시장 연구를 위해 내부 전담팀을 꾸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선 밈주식이나 코인에 집중됐던 투기성 자금이 예측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코인데스크 등 암호화폐 매체들은 미국 대선 기간 밈코인과 알트코인에 몰렸던 단기 투기 자금 일부가 폴리마켓 같은 예측시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실상 예측시장이 도박과 다름없단 비판도 적지 않다. 구조만 보면 불확실한 미래에 돈을 거는 스포츠 베팅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싱가포르 등은 예측시장을 불법 도박으로 규정한다.
내부자 거래나 시장 조작 의혹도 제기된다. 폴리마켓에선 한 익명의 이용자가 미군의 베네수엘라 작전 몇 시간 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체포될 거라는 데 막판 베팅해 40만달러를 벌어들여 내부자 거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칼시의 경우 지난달 심야 토크쇼 관련 멘션 시장을 슬그머니 닫았다. 프로그램이 방영 전 사전 녹화된다는 점 때문에 내부 정보를 가진 이가 판돈을 가져갈 수 있단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21일 미국 코미디언 마틴 쇼트가 지미 키멜 쇼에 출연해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하는 베팅이 열렸는데, 시장에선 방영 3시간 전 "트럼프", "셀레나", "골든글러브" 멘션 계약 가격이 급등했고 방송에선 이 세 단어가 정확히 언급됐다.
예측시장 열풍에 뉴욕대(NYU)의 문화인류학자 나타샤 슐 교수는 "세상의 모든 사건이 금융 상품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에는 야구 경기나 연준 의장의 연설을 그 자체의 맥락과 본질로 즐기고 이해했다면 이제는 이를 조각조각 나누어 베팅의 대상으로만 소비하게 된단 지적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인간은 풍부한 경험을 잃어버리고 단순히 베팅하는 주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