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딸깍, 딸깍…."
최근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미디어)를 점령한 이 기묘한 소리의 정체는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로 만든 이른바 '키캡 키링'을 누르는 소리다. 영상 속 젠지(Z세대)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키캡 키링'을 꺼내 무한 연타한다. 댓글 창에는 "출근길 멘털 치유엔 이 소리가 최고", "일하다 화날 때마다 무한 연타 중"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
팝마트의 '라부부' 등 캐릭터 인형이 주도하던 '키링' 열풍이 단순히 보기 좋은 시각적 가방 장식에서 직접 누르고 즐기는 촉각적 아이템 '키랩'으로 이동한 셈이다. 외신 분석 및 SNS 반응을 종합하면 세계 젠지들은 '키캡 키링'의 DIY 매력에 공통으로 끌리고 있다. 누르는 압력과 소리가 서로 다른 스위치 유형을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은 물론, 3D 프린터로 제작된 독특한 디자인의 키캡으로 자유롭게 교체가 가능한 점이 젊은 층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다.
세계적인 패션 전문 매체 보그(Vogue) 등은 젠지들이 정형화된 브랜드 제품 대신 나만의 개성을 무질서하고 독특하게 결합하려는 '카오틱 커스터마이제이션'(Chaotic Customisation·혼란스러운 맞춤형) 특징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성품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스위치와 키캡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독창적인 놀이 공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글로벌 젠지의 '키캡 키링' 실제 소비 목적은 국가별로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과 미국의 '키캡 키링' 인기는 일상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심리적 소비'에 가깝다.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만성적인 디지털 피로에 시달리는 젠지들이 손끝의 아날로그 촉각을 통해 정서적 위안을 얻고 있다. 국내 트렌드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 불황기 스트레스를 소소하게 푸는 '매운맛 챌린지'나 '힐링 소품' 소비가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생활 전문지 리얼 심플(Real Simple)은 "젠지들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겪는 만성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감각을 자극하는 '센서리 토이(Sensory Toys)'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며 키캡 키링의 인기 배경을 설명했다.
리얼 심플에 따르면 키캡 키링은 미국에서 손으로 반복적으로 누르거나 돌리며 긴장을 완화하는 '피젯 토이'(Fidget Toy)의 하나로 분류되기도 한다. 과거 유행했던 피젯 스피너나 스트레스 볼처럼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클릭감을구현한 키캡 키링이 새로운 피젯 토이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계식 키보드 스위치 특유의 짧고 즉각적인 촉각 자극이 스마트폰과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에 익숙해진 젠지의 감각 소비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키캡 키링' 인기는 한국, 미국과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취향 소비'에서 비롯됐다. 일본 내에서 강세를 보였던 커스텀 키보드 취미와 타건 체험 문화의 연장선에서 키캡 키링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키보드 스위치의 종류와 압력감, 클릭음 등을 즐기는 이른바 '타건 문화'가 발달한 국가로 꼽힌다.
실제 일본 IT(정보기술) 매체 'ITmedia PC USER'는 최근 키캡 키링 제품을 조명하며 "좋아하는 스위치와 키캡을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임프레스그룹 산하 IT 매체인 'PC Watch' 역시 기존 기계식 키보드와 호환이 가능한 키링을 소개하며 "피젯 용도로 쓰이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키감을 다른 사람에게 체험시키기 위한 아이템"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키캡 키링이 일상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완화하는 '심리적 소비' 성격이 강하다면, 일본에서는 타건감과 키보드 커스터마이징 취향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취향 소비' 성격이 더 짙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