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더 태우고, 식이섬유 더 먹는 젠지의 '가치 극대화'…
"거시적 경제 불안·무력감이 부른 강박적 방어기제"

온몸에 자외선 차단제가 아닌 태닝 오일을 바른 뒤, 햇볕이 가장 강한 시간대에 태닝을 한다. 또다른 인물은 자외선 지수가 6 이상으로 올라가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각각 오른 이 영상들은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뿌렸다. 모두 '탠맥싱'(tanmaxxing)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다.
탠맥싱은 '태닝'(Tanning)과 극한의 효율을 뜻하는 '맥싱'(Maxxing)의 합성어다. 자외선이 가장 강렬한 시간을 공략해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단시간에 피부를 극단적으로 햇볕에 그을리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름철을 맞아 태닝을 일종의 '체형 보정'으로 재해석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하면서 탠맥싱 영상이 급격히 늘었다. 태닝으로 피부가 어두워지면 근육 라인이 도드라지고 몸매가 한층 슬림해 보인다는 주장이 Z세대(젠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탠맥싱 열풍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아메드 엘 문타사르는 짙은 태닝이 건강해 보인다는 인식과 실제 피부 건강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메리 우 창 코네티컷대 피부과 전문의 역시 "건강한 태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든 태닝은 피부 노화와 피부암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로레알그룹의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라로슈포제는 자사 공식 계정에 "'태닝 맥싱'보다 '보호 맥싱'"이라는 문구와 함께 자외선 차단을 촉구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경고에도 탠맥싱 인기는 여전하다. 영국 매체 그레이지아에 따르면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틱톡 내 탠맥싱 관련 검색량은 전주 대비 50.4% 급증했다. 캐나다 피부과학회 조사에서도 Z세대의 39%가 지난 1년간 의도적으로 태닝한 적이 있고, 이 중 72%는 실외에서 태닝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Z세대 사이에 퍼진 '맥싱 문화'를 탠맥싱 인기 배경으로 꼽았다. 탠맥싱을 단순 여름철 유행이 아닌 일상 전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는 Z세대의 '가치 극대화 성향' 연장선으로 본 것이다. '맥싱'은 무언가를 그냥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데, 최대한(max) 밀어붙여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더 많이 읽는 '북맥싱'(Bookmaxxing), 식이섬유를 과도하게 섭취하는 '파이버맥싱'(Fibermaxxing), 수면의 질과 양을 극대화하려는 '슬립맥싱'(Sleepmaxxing)까지 등장했다. 외모를 극단적으로 가꾸는 '룩스맥싱'(Looksmaxxing)도 있다. 룩스맥싱은 2010년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은어가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거쳐 대중화된 사례다.

맥싱 문화 열풍은 산업 지형과 소비 지표 변화도 변화시켰다. 영국의 지난 1년간 셀프 태닝 제품 매출은 43% 급증했고, 식료품 업체들은 팝콘과 탄산음료까지 식이섬유를 강화한 제품을 내놨다. 룩스맥싱은 Z세대 남성을 미용 의료와 메디컬 스킨케어 시장의 핵심 소비자로 등극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틱톡 내 독서 커뮤니티 '북톡' 인기 영향으로 유럽 도서 판매는 약 8억유로(1조3538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국 SF·판타지 장르 판매량은 2년 새 41.3%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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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맥싱 문화의 확산은 Z세대의 무력감과 불안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 기후 위기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시적 불안이 커지자, 눈앞의 수치만이라도 완벽히 통제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다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그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목표로 옮겨가는 패턴이 반복되면, 성취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