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종전 판 흔드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충돌, 44년전 이 사건 판박이

김종훈 기자
2026.06.23 15:28

[미국-이란 전쟁] 이스라엘, 1982년 베이루트 14시간 공습
레이건 "홀로코스트" 분노…"미국이 제어 못하면 재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대통령집무실에서 양자컴퓨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 중인 모습./로이터=뉴스1

갈등과 진정 국면을 반복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핵심변수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 관계가 주목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국제유가 안정을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 중단을 이스라엘에 촉구한다. 44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결과는 어땠을까.

레이건 "홀로코스트"-트럼프 "당신 미쳤다" 판박이

1982년 이스라엘은 영국 주재 자국대사 피격 사건을 명분으로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른바 '갈릴리 평화 작전'으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까지 북진했다. 레바논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쫓아내기 위한 제한적 공세를 내걸었으나 PLO를 완전 궤멸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일기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그해 8월12일 베이루트를 최소 14시간 동안 공습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건 홀로코스트"라며 공습 중단을 요구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나는 분노에 차있었다"며 "일부러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미쳤느냐" "내가 아니었으면 감옥에 갔다"고 윽박지른 것과 비슷하다.

44년이 흐른 지금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은 PLO에서 헤즈볼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에게 헤즈볼라는 PLO보다 훨씬 제거하기 어려운 상대다. 레바논 입장에서 외지인인 PLO는 레바논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외교를 통한 해결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반면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 시아파 국민들에 뿌리를 둔 토착세력이다. 쫓아낼 수 없고 뿌리 뽑기도 어렵다.

이스라엘이 밟고간 땅에서 헤즈볼라가 자라

레바논 남부 시아파 무슬림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적대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 중 수니파 PLO 탓에 자신들까지 피해를 본다며 이스라엘이 PLO를 몰아내주길 바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갈릴리 평화작전과 이후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을 거치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었다. 이스라엘군은 시아파 주민들과 수시로 갈등을 빚었다. 특히 종교·신앙과 관련된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을 눈여겨 본 이란이 이란혁명수비대(IRGC) 요원들을 보내 무장세력을 조직했고 그 산물이 헤즈볼라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006년 '34일 전쟁'에서 본격 충돌한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그해 결의안 1701호를 채택,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갈등 종식을 시도했다. 팔레스타인 전쟁이 한창이던 2024년 11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1701호를 근거로 휴전을 발표하긴 했으나, 결국 1701호는 이스라엘도 헤즈볼라도 억누르지 못한 실패한 결의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헤즈볼라는 계속 군비를 증강해 이란의 강력한 대리세력으로 부상했다.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 남부 점령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레이 레베이즈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정치학과 부교수는 지난 18일 더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 접경 지역에서 벌이는 군사 행동을 미국이 제어하지 못하면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22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라픽 하라리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도로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와 모즈타바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의 초상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은 모습. 초상 아래 문구는 "충성스러운 이란에 감사를 표한다"는 뜻이다.

"헤즈볼라 시리아한테 맡기자" 트럼프에 전문가 '위험한 발상' 경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헤즈볼라 문제를 시리아에게 맡기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동 전문가들은 레바논에 시리아를 끌어들이는 것은 더 심각한 갈등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리아는 레바논 내전 발발 직후인 1976년부터 2005년까지 레바논에 군대를 주둔시켜 지배력을 행사했다. 명분은 평화유지였지만 실상은 악명 높은 정보기관 '무카바라트'를 통해 레바논 곳곳을 감시, 사찰했다. 1990년 레바논 대통령 관저를 공격해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 중이던 미셸 아운 당시 총리를 축출하기도 했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앤드류 태블러 선임연구원은 지난 12일 분석 글에서 "시리아의 30년 레바논 점령을 고려한다면 시리아군의 (레바논) 재주둔은 레바논 주권을 위한 조치가 아니라 외국의 강압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헤즈볼라는 시리아군을 시아파 공동체를 공격하려는 수니파 지하디스트로 묘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를 계기로) 헤즈볼라가 더욱 결집할 수 있다"고 했다.

태블러 연구원은 "시리아의 레바논 개입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오판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긴장 고조를 막으려면 이 문제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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