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맹국의 핵무장을 용인하거나 지원할 수 있다는 이른바 '우호적 핵확산' 논쟁이 부상하면서 동맹 체제의 신뢰성과 핵확산 방지 원칙 사이의 긴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스트리드 세브뢰유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유라시아 프로그램 객원연구원은 '우호적 핵확산(Friendly Proliferation)' 보고서를 통해 "우호적 핵확산 논쟁은 미국의 동맹 관리와 비확산 체제가 동시에 압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미국과 동맹국들은 핵확산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국과 동맹국이 예측 가능하고 제도화된 동맹 관리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호적 핵확산' 담론이 20세기 여러 정책입안자와 국제정치 이론가들의 논의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서독과 민감한 기술을 공유하는 등, 비확산 강제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보다 핵심 안보 파트너십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실용적 노선을 택했다. 1980년대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두려움이 지도자들의 합리적 행동을 유도해 오히려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핵확산을 옹호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국방 전문가와 지역 연구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줄이고 동맹국의 안보 자립을 강화하기 위해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로 발전했다.
보고서는 동맹국에 대한 우호적 핵확산에서 주로 논의되는 세 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핵물질, 운반체계, 무기체계를 포함한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잠재력' 확보 △기존 확장 억지 체계 및 핵무기 관련 접근성 확대 등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우호적 핵확산 논의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선택적 동맹국 핵확산', '핵무기 참여', '핵잠재력'과 같은 표현은 전통적 핵무기 공유와 민간 핵 프로그램 수용 가능성 사이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핵확산을 용인할 수 있는 '우방'에 대한 기준이 유동적이며, 동맹국의 핵개발 동기 역시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동맹국이 독자적 억지력을 추구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미국 핵정책 전문가들이 대체로 우호적 핵확산에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 인터뷰에 참여한 42명의 전문가 중 다수는 국제사회의 의무, 미 의회의 감독, 제재 관련 법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등이 정책 변화를 막는 제도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어 우호적 핵확산이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최근 우호적 핵확산 논의가 부상한 배경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이를 정책 전환의 신호라기보다 비확산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미국의 전략 환경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핵강대국의 위협이 동시에 커지면서 미국의 확장 억지력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의 핵 인프라가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하기에 충분히 유연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동맹국이 자체 핵억지력을 갖출 경우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미국이 더 큰 전략 경쟁에 집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수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핵증강만으로 동맹국의 핵확산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한국과도 직접 연결된다. 보고서는 한국 보수 진영이 10년 넘게 핵무장론을 제기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위협에서 비롯됐지만,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2023년 워싱턴 선언 이후 핵무장 논쟁은 다소 완화됐지만, 한국의 민간 원자력 역량과 핵잠재력은 핵무장 논의에서 중요한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한미 핵잠수함 협력 논의도 보고서가 주목한 우호적 핵확산 사례다.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한미 잠수함 건조 협정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해석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부 전문가는 이를 서울의 핵무장 압력을 낮추기 위한 기술적 유화책으로 봤다. 다른 전문가는 미국 조선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경제·산업 전략으로 해석했다. 반면 일부는 농축·재처리 능력과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기술 이전이 NPT 체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이 사례가 민간 핵 기술과 안보 협력이 결합될 경우 비확산 기준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우호적 핵확산 논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국이 예측 가능하고 제도화된 동맹 관리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를 위해 확장 억지력과 비확산 간의 연계를 공식화하고 기존의 확장 억지 메커니즘 안에서 비확산 원칙과 확장억지의 신뢰성, 동맹국의 안보 우려 등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핵무기 활용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민군 핵 협력은 핵확산 방지 약속과 체계적으로 연계시키며, 특정 군사 또는 민간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이 핵무장 용인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세브뢰유 연구원은 우호적 핵확산 논쟁이 아직 정책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동맹 관리와 비확산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신호라고 짚었다. 따라서 미국이 동맹국 핵확산에 대한 명확한 선언적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브뢰유 연구원은 "미국과 동맹국들은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의 핵확산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공동으로 전달하고, 자체 핵 개발은 동맹국을 집단 안보 체제에서 기술적·정치적으로 이탈하게 만든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