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자본지출(CAPEX) 전망치를 최대 300조원 규모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대규모 설비투자로 반도체 기업들에 수혜가 예상되지만 AI 투자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알파벳은 막대한 투자 여파로 분기 잉여현금흐름이 상장 후 처음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알파벳은 22일(현지시간) 2분기 실적 발표 후 올해 CAPEX 전망치를 1950억~2050억달러(약 288조~302조원)로 제시했다. 1800억~1900억달러이던 종전 전망치는 물론 시장이 예상했던 1860억달러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알파벳은 AI 인프라 수요 급증에 대응해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확충한단 계획이다.
아나트 애슈케나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년간 AI 컴퓨팅 인프라를 크게 늘렸지만 수요가 여전히 이를 앞지르고 있다"며 "AI 컴퓨팅 인프라를 예상보다 빠르게 확충할 수 있게 되면서 올해 설비투자 계획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에도 설비투자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루이스트증권의 조지프 스콸리 수석 애널리스트는 알파벳의 CAPEX 투자에 대해 "확대 추세를 감안하면 내년 2700억~2800억달러,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이 이 정도 투자 규모를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이날 발표된 알파벳의 2분기 실적 자체는 양호했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1198억달러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1169억달러)를 웃돌았다. AI 인프라 수요를 보여주듯 클라우드 매출이 82% 급증한 248억달러를 기록했다. 주력 사업인 검색과 유튜브 광고 매출도 각각 632억달러, 111억달러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다.
주당순이익(EPS)은 9.11달러를 기록해 월가 전망치(2.89달러)를 3배 이상 웃돌았다. 알파벳 측은 이에 대해 스페이스X와 앤트로픽 등 보유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투자자산 평가이익 등을 제외한 조정 EPS는 2.85달러로 집계됐다.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는 특히 클라우드 매출 증가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의 AI 투자는 모든 분야에서 가능성의 지평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고 차별화된 AI 접근법은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포천 100대 기업 중 90%가 기업용 제미나이 모델을 도입했고 월간 활성 사용자는 9억50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다만 과감한 AI 투자는 재무 부담으로 작용했다. 2분기 자본지출이 449억달러에 달하면서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58억6000만달러로 돌아섰다. 잉여현금흐름 마이너스는 2004년 상장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하반기 분기당 240억달러가 넘던 알파벳의 잉여현금흐름은 올해 1분기 10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한 데 이어 결국 2분기 들어 적자로 돌아섰다. 본업으로 벌어들인 현금보다 AI 설비 투자로 나간 돈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투자 계획과 현금흐름 악화가 동시에 공개되면서 막대한 AI 투자에 걸맞은 수익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시장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기술 기업들의 천문학적 투자가 실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 의구심을 키워 왔다.
인베스팅닷컴의 토머스 몬테이루 수석 애널리스트는 "가장 안정적인 현금 창출 기업으로 꼽히는 알파벳이 이제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마이너스 현금 흐름을 기록한 뒤 추가적인 투자 확대는 좋지 않은 소식"이라며 "금리 상승과 AI 인프라의 공급 부족 상황에서 알파벳이 앞으로도 막대한 투자를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를 두고 시장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파벳 주가는 22일 뉴욕증시에서 1.46% 하락 마감한 뒤 실적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 3%대 추가 하락했다. 차세대 플래그십 AI 모델인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가 내부 평가 기준 미달로 연기되고 있다는 소식도 악재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