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화된 중국 에너지 안보 전략…국제유가 완충 효과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6.08.09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중국 에너지 안보 전략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사막 유전의 석유 채굴 장비 뒤로 해가 지고 있다./AP=뉴시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국의 원유 수입 급감이 국제유가 안정에 기여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국제유가 폭등이 우려됐지만 중국측 수요가 줄면서 유가 상승 압력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중국이 원유 수입을 줄일 수 있었던 정책적 배경과 전략적 원유 비축이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다층화된 中 에너지 안보 체계… 원유 의존도 축소 통한 위기 대응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이 선제적으로 구축해 온 에너지 안보 체계가 주목받는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당초 호르무즈해협 봉쇄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은 소비하는 원유의 70% 이상을 수입하고 그 중 절반 가량을 중동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위기 국면에서 중국은 원유를 비싼 가격에 확보하기보다 수입을 줄이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중국 원유 수입은 올해 2분기 일일 평균 810만 배럴로 전 분기보다 약 400만 배럴 줄었다. 6월 수입은 일일 712만 배럴로 전년동월대비 약 500만 배럴 감소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원유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운송이다. 자동차·화물차·건설장비에 쓰이는 휘발유와 경유, 항공기의 항공유가 주된 수요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휘발유·경유·항공유 소비량은 일일 평균 약 810만 배럴로 일일 석유 소비량인 약 1630만 배럴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중국은 운송 부문의 전동화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낮춰왔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5년 전기차 판매량은 1649만 대로 전년대비 28.2% 증가했으며, 신차 판매의 47.9%를 차지했다. IEA는 2025년 중국에서 운행된 전기차가 일일 평균 약 100만 배럴의 석유 수요를 대체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기차 없이 내연기관 차량만 운행했을 경우 석유 소비량의 약 15%에 해당한다.

여기에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전력구조도 전동화를 뒷받침했다. 중국의 전력구조는 국내에서 대량 조달이 가능한 석탄을 기반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이 보완하는 구조다. 특히 탄소 중립을 위해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기존에 70%대였던 석탄 발전 비중은 지난해 51.1%까지 낮아졌고 태양광과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8.5%까지 높아졌다. 반면 석유와 천연가스 발전의 비중은 모두 합해 5% 내외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전력구조 하에서 석유 수입이 줄어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했고 운송 부문이 받는 충격도 제한됐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원자력발전 설비도 적극 확대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26년 5월 기준 중국은 원자로 60기를 가동 중이며 현재 36기 신규 원자로를 건설 중이다. 중국 국무원은 원전 확대 정책에 따라 2035년까지 최대 150기까지 원전을 건설할 계획으로 알려진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는 지난 2010년대부터 지정학적 위기에 취약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인 '에너지믹스'를 추진했다"며 "전기차를 늘리면서 석탄 발전은 줄이고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는 등 다층화된 에너지 안보 전략이 이번 호르무즈 위기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원유 수요의 또 다른 핵심 분야는 석유화학 산업이다. 원유에서 생산한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 등이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포장재와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전체 석유 수요에서 석유화학 부분 수요는 일일 약 400~500만 배럴로 약 25~30%의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은 높은 석유 의존을 줄이기 위해 석탄화학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은 석틴화학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일부 석유화학 원료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2024년 중국석유화학산업계획원이 집계한 석탄 전환량은 2억7600만 톤이며 향후 5년간 생산능력은 약 두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 중국 석탄화학 기업의 가동률도 최근 90% 내외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며 매출 규모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미국-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수급 불안정 국면에서 자국 내 풍부한 석탄 자원과 고도화된 '석탄화학 산업' 공정을 안보 자산화 함으로써 높은 에너지 복원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간쑤성 바이인시 평천구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단지/출처: 평천구융합매체센터(平川區融媒體中心)
저유가 때 쌓고 고유가 때 활용…中, 비축유의 유가 완충 효과

대규모 원유 재고도 중국이 수입을 줄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은 지난 2004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전략비축 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비축 활동은 국제유가에도 뜻밖의 완충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유가 시기엔 비축을 늘려 유가 하락을 억제하고, 고유가 시기엔 비축유를 방출해 유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 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해 국제유가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 우려로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월평균 가격은 1월 배럴당 75.7달러에서 12월 58.0달러로 약 23% 하락했다. EIA는 2025년 하반기 세계 석유 공급 초과분이 하루 250만 배럴을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유가가 하락하자 중국은 원유 재고를 대폭 확대했다. EIA는 중국이 2025년 일일 약 110만 배럴을 비축해 연말 기준 재고가 약 14억 배럴(상업용 재고 포함)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연간 약 4억 배럴로 당시 미국 전략비축유(SPR)인 약 4억 1300만 배럴과 맞먹는 규모다. EIA는 이러한 중국의 재고 축적이 국제유가를 배럴당 68∼69달러 선에서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만약 중국이 비축에 나서지 않았다면 원유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유가 하락 압력은 더 커졌을 거란 설명이다.

올해는 상황이 반전됐다. 미국-이란간 전쟁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이어지자 월가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 이상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세계 원유 운송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원유시장의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우려만큼 오르지 않았다. 지난 3월 23일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격인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169.7달러까지 올랐지만 곧 하락했고,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120달러 안팎에 머물렀다.

이처럼 유가 상승이 제한된 요인 가운데 중국 비축유의 역할이 거론된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비축을 늘린 중국이 올해는 원유 재고를 활용하면서 신규 원유 수입을 줄였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원유 수입량은 올해 2월 일일 1139만 배럴에서 5월에 636만 배럴로 단기간에 약 503만 배럴 감소했다.

에너지 분석업체 커머디티 컨텍스트(Commodity Context)의 설립자 로리 존스턴은 지난 29일 중국 관련 전문 매체인 차이나토크(ChinaTalk)에서 "중국이 일일 약 500만 배럴의 원유 수입을 줄인 것은 OPEC의 대규모 감산에 맞먹는 규모"라며 "이 기간 아시아 현물시장에서 발생한 공급 부족분의 약 3분의 2를 중국이 단독으로 상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원유 수입 감소로 다른 수입국이 살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났고, 공급난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이 완화됐다는 의미다.

실제 중국 국영 정유사들은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현물 원유를 구매하기보다 정유소와 항만에 보유한 상업재고와 이미 운송 중이던 물량을 우선 활용했다. 또한 정유시설 가동률을 낮추고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수출도 제한했다.

중국의 원유 비축은 미국처럼 국제유가를 안정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국내시장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한 대응이 결과적으로 국제 원유 수요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유가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지난 21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전략비축체계가 2004년 정부 비축시설 중심의 해안 네트워크에서 정부·상업·지방 비축을 결합한 전국적인 체계로 발전했다"며 "중국은 국제유가 조절을 위한 적극적 방출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국내 안정성을 우선하면서 비축유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적 신중함'을 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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