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에 숨어있다 성폭행 살해"...9세 여아→71세 할머니까지 노렸다[뉴스속오늘]

"논두렁에 숨어있다 성폭행 살해"...9세 여아→71세 할머니까지 노렸다[뉴스속오늘]

박다영 기자
2026.08.09 06:05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한 남성의 DNA가 나왔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돼있던 '이춘재'였다. 첫 범행 후 33년이 지나 공소시효가 끝나버렸고, 죄 없는 사람이 누명을 써 20년간 옥살이를 한 시점에서 경찰은 뒤늦게 진범을 찾아내 사건의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9세부터 71세까지 여성만 노렸다…경찰력 205만명 동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총 14건에 걸쳐 발생한 대한민국 최대 영구 미제사건이었다.

이춘재는 논두렁, 수풀 등에 숨어있다가 밤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을 노려 성폭행 후 살해했다. 피해자는 9세 초등학생부터 71세 노인까지 전부 여성이었다. 이춘재는 대부분의 살인에 스타킹, 양말 등 피해자의 소지품을 이용했다.

14건 중 11건이 경기 화성에서 벌어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건은 수원에서, 나머지 2건은 충북 청주에서 발생했다.

수십년간 미제 사건이었던 이 사건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찰력이 동원됐다. 연인원 205만명에 달하는 경찰이 투입됐고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을 대조 당한 사람은 무려 4만116명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2003년 4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 사진=살인의 추억 포스터
봉준호 감독이 2003년 4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 사진=살인의 추억 포스터

봉준호 감독이 2003년 4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선보여 다시 한번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군 전역 후 무료한 생활…범행은 '욕구불만 표출 수단'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2019년 8월 9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사진=뉴시스

진범을 찾아낸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DNA 분석기술'에 있었다.

당시 DNA 검출·분석기술이 발전해 정확도가 대폭 높아진 상황이었다. 경찰은 과거 DNA를 검출하지 못해 미제가 된 사건의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이 사건의 증거물도 국과수로 보내졌다.

2019년 8월 9일 9차 사건 피해자의 증거물에서 처음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이어 3·4·5·7차 사건의 피해자 유류품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등을 중심으로 수사팀을 꾸렸고 2019년 9월 18일 이춘재를 접견하면서 재수사를 시작했다.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던 이춘재는 9월 24일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파일러와 라포(정서적 신뢰감)가 형성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9번째 조사가 이뤄졌던 10월 1일 드디어 자백했다. 11차 조사에서는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까지 자신의 범행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은 2019년 12월 사건 명칭을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변경했고 이듬해 7월 이 사건의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춘재의 범행에 대해 경찰은 '욕구불만의 표출 수단'이었다고 봤다.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지 못했던 그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인 역할을 맡아 성취감을 느꼈으나, 전역 후 주도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해 가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이춘재는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였다"며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와 살인을 지속했음에도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고, 범행 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한 것 같다"고 봤다.

이춘재는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음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는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이다.

이춘재는 2020년 11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진범으로 특정된 데 대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사건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모든 것이 스치듯 지나갔다"고 했다.

3차례 수사하고도 풀어줘…죄 없는 사람 20년간 옥살이

진범이 밝혀진 후에는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과거 경찰이 이춘재를 용의선상에 올려 3차례 수사를 진행하고도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점도 비판 여론에 불을 지폈다.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만리 가정집에서 당시 14세 소녀 A양을 상대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8차 범행이 벌어졌다.

당시 현장에서 체모가 발견됐고 분석 결과 일반인보다 300배 많은 티타늄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분석 결과에 따라 기계 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수사했고 수사를 시작한 지 10개월여가 흐른 1989년 7월 25일 경운기 수리센터에서 일하던 윤성여씨(당시 22세)를 체포했다.

이후 경찰은 윤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행과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고 허위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기도 했다. 참여하지도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속여 허위공문서도 작성했다.

윤씨는 소아마비 환자로 치밀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상태로 보기 어려웠고 본인도 교도소에서 지속적으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아 20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2009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이춘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과 그의 가족, 그 외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손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씨는 재심 끝에 2020년 12월 17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 국가가 억울하게 형을 받게 된 사람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 25억1000만원, 경찰의 가혹행위 등에 대한 국가배상금 18억7000만원을 받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박다영 기자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