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레이스 뜨는 여자

[Book] 레이스 뜨는 여자

이재경 기자
2008.09.18 12:21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되 그 나름으로 조화를 이루며 살던 한 여자가 있다. 겉과 속이 둥글고 반들반들한, 그래서 '사과' 곧 '뽐므'로 불렸다. 뒷날 열여덟 나이 때 순수와 침묵의 심연에서 사랑이 삶을 삼켜 버리고 사랑 앞에서 정신을 놓는다.

'레이스 뜨는 여자'(부키 펴냄)는 아무 잘못 없이 버림받고 마는 한 여자가 걸어온 삶의 길을 통해 성과 출신 배경 그리고 계급의 차이에서 싹트는 현실 사회의 모순과 비극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74년 프랑스 현대 문학의 산실인 갈리마르에서 첫 선을 보인다. 이 소설은 문학이 씨줄로, 철학과 사회학 그리고 심리학이 날줄로 얽힌 독특하고 작품성 높은 텍스트로 처음부터 평단의 눈길을 끈다.

휴가철 바닷가에서 만난 여자와 남자, 서로 끌린 두 사람의 동거, 짧은 밀월, 출신 배경과 성격이 다른 데에서 오는 소통의 어려움, 침묵, 가로놓인 벽, 막막함, 헤어짐,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여자, 슬픔 그리고 수치심, 그 여자의 거식증과 정신병원 행.

어찌할 바 없는 해석의 폭력 앞에 평온함과 감수성, 아름다움이 지워지며 비참한 자아로 떨어진 그 여자 뽐므. 초라한 운명을 타고난,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 여자 뽐므는 저한테 너무 조금밖에 주지 않는 이 세상에 마침내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 여자가 문득 삶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다. 신경성 식욕 부진 곧 거식증은 그 단절 의지가, 이해할 길 없는 세상과 저를 따로 떼어 놓으려는 의지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 결과다.

이 텍스트에 담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과 밀도 높은 문장, 실험성 짙은 내러티브 구조, 그리고 낯선 서술 기법은 이른바 누보로망이 이룬 성과를 이어받는 한편 새롭게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는 평가다.

저자는 프랑스 68혁명의 소용돌이를 건너온 작가다. 그의 현실 인식은 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치던 1968년 5월의 그 변혁 운동의 40주년이 되는 해에 다시 만나는 이 책은 그 느낌이 각별하다.

◇레이스 뜨는 여자/파스칼 레네 지음/이재형 옮김/부키 펴냄/192쪽/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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