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지난달 31일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 성과를 돌아보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이 날 제기된 주장 중 방통위가 플랫폼 위주 정책에서 탈피해 문화 콘텐츠 진흥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콘텐츠의 중요성은 그간 누차 강조되어 왔고 다양한 콘텐츠 육성정책은 마련되었으나 실제적 성과는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콘텐츠의 공정한 유통환경 확보를 위한 사회적 공론화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은 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피가 잘 순환해야 손, 발, 두뇌 등 우리 몸의 각 부분으로 영양분이 골고루 배분될 수 있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행여나 동맥경화가 걸리면, 피가 순환되지 않고 심각한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 발 등에 치명적인 마비가 올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 생태계도 우리의 몸과 같아서, 공정한 콘텐츠 유통환경 조성 없이는 원만한 콘텐츠의 거래가 있을 수 없다. 미디어 생태계에 참여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독특한 특성을 살려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유통환경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간 국내 뉴미디어 시장에서의 방송 콘텐츠 거래 질서는 유력 콘텐츠 소유자가 좌우했다고 할 수 있다. 유력 콘텐츠 소유자의 입장이 시장의 규칙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공정한 제공이나 적정 대가에 대한 적정한 논의 등을 고려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령 지상파 방송의 경우 인터넷TV(IPTV)에 재전송되고 있지만 대가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고 유력한 케이블 방송채널사업자(PP)들과의 콘텐츠 제공협상도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케이블 사업자와 지상파간 재전송 대가 관련 논의는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재전송 대가 문제가 논란이 된 사례는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의무 재전송의 경우 돈을 받지 않고 있으며, 동의 재전송은 콘텐츠 대가를 지불하되 부담이 되지 않는 명목적인 금액 수준이다. 독일의 경우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송출료를 주고 있다.
최근까지 지상파 채널들(KBS2, MBC, SBS)은 케이블과 위성방송 플랫폼에 무료로 채널을 제공해 왔다. 지상파 난시청문제로 인해 대안적 플랫폼을 확보할 필요성과 경쟁력 있는 채널을 확보하고자 하는 다채널방송 플랫폼의 수요가 거의 대등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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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균형이 위성이동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IPTV, 디지털케이블 전환 등 뉴미디어 서비스 등장에 따라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지상파 채널들은 다채널 플랫폼에 무료로 채널을 제공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위성DMB, 디지털 케이블 및 IPTV 플랫폼에 대한 재송신 유료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기관은 자율 계약 원칙만을 강조하고 사업자간 분쟁 발생 시 중재하는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향후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슈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콘텐츠의 적정대가 산출 모델은 콘텐츠 특성상 쉽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제작원가 외에 광고와의 연계성, 시사성, 시청률, 독점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콘텐츠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다매체 환경에서 대가 산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공신력을 갖춘 기관에 의한 가이드라인 등 방향 제시가 바람직하다.
시장은 예측 가능한 합리적 거래환경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며 콘텐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육성은 누구나 이야기 하지만 그 발전을 위한 기반이 되는 관행과 절차를 마련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미디어산업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거래와 관련한 소모적 불협화음이 계속되는 것은 곤란하다. 플랫폼과 콘텐츠 간 합리적인 거래질서가 정립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