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출신 인재들이 창업해서 '제2의 벤처 붐' 일으켜야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더 많이 나와 벤처 창업에 나서야 합니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청년창업 활성화로 창조경제를 꽃피우기 위해선 삼성전자와 같은 IT 대기업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창업전선에 뛰어 들어 제2의 벤처 붐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도 "매년 고정적으로 삼성 등 대기업에서 나오는 청년들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뛰어난 기술력과 기업가 정신을 갖춘 인재들이 다른 기업에 취직하는 대신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며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의 주장은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벤처 붐이 일었을 때도 삼성이나 LG에서 대거 인재들이 나와 벤처 창업에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그당시 국내 최고의 기업인 삼성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창업에 나서 성공한 사례가 많다. 네이버 포털사이트 NHN의 이해진 의장, 온라인 게임업체 한게임커뮤니케이션즈(2003년 NHN과 합병)의 김범수 대표(현 카카오 의장),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파트론의 김종구 대표, 셋톱박스 제조업체인 가온미디어의 임화섭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 특히 장비, 반도체 산업 벤처기업들은 삼성이 상용화하지 않는 원천기술을 이용해 관련 부품을 생산한 뒤 이를 삼성에 납품하는 독립 분사형 벤처기업이 다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독립 분사 유형이 아닌 순수 창업으로 성공 궤도에 진입한 삼성출신 벤처CEO가 늘고 있다. 케이디랩(KDLAB)의 이규철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서 창업 7년 만에 연매출 80억원을 올리며 케이디랩을 스마트폰 케이스 제조 업계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키웠다.
삼성전자 등에서 근무하다 2007년 퇴사한 뒤 패키지 제품 회사인 비오비패키지스타일그룹을 설립한 김강국 대표도 1000여개에 이르는 경쟁업체 사이에서도 삼성전자, 웅진코웨이, 애경 등 대기업과 계약을 맺으며 비오비를 성장시켰다. 2011년 (주)페이퍼로를 창업해 종이제품 조립 사업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한 후에는 연 매출 20억원을 달성했다.
이들은 삼성출신이 벤처 창업에 강한 이유로 3가지를 꼽고 있다. 우선 스마트한 방식의 업무 스타일이다. 이 대표는 "삼성맨들은 상사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삼성맨의 업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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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특정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관련된 모든 부서가 시작단계부터 협업해 철두철미하게 작업을 완성하는 삼성의 업무 프로세스도 큰 자산"이라고 밝혔다. 케이디랩은 핸드폰 케이스 디자인 방식에 삼성프로세스를 차용해 디자인→기획→제작과 같이 단계별, 부서별로 따로 진행하는 대신 모든 부서가 디자인 단계부터 협업해 철두철미하게 작업을 완성한다.

둘째 삼성의 조직문화다. 조상문 전 네오텔레콤 CEO이자 현 벤처1세대 멘토링센터 멘토는 "삼성맨들은 열심히 일 하는 게 체질화돼 있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에도 근무하는 조직문화가 있다"며 이러한 삼성의 조직문화가 창업에 뛰어든 삼성출신들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삼성 문화에 익숙한 삼성출신들은 개인 창업에서도 강도 높고 타이트하게 기업을 운영해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 멘토는 삼성전자에서 10년동안 정보통신부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셋째 삼성 브랜드에 부여되는 글로벌 그룹이라는 가치와 신뢰감이 삼성출신 창업가들에게 자산이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삼성 출신 창업가라고 하면 남들보다 창의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조 멘토도 "벤처 캐피탈 등 투자처나 사업 거래처에서 창업기업을 평가할 때 아무래도 삼성출신에 대해서는 평균치보다 높은 신뢰감을 갖는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삼성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다 창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삼성출신이라는 특권의식을 벗지 못해 벤처기업 운영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 삼성출신이라는 '슈퍼갑' 특권의식을 벗지 못해 애를 먹었다며 "거래처 사장들과의 자리에서 은연중에 삼성출신이란 점을 내세웠고 거래처 사장들이 이를 탐탁치않게 여기면서 사업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기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이 대표는 "삼성에서 나오는 순간 '을'(乙)도 아닌 '병'(丙), '정'(丁)으로 위치로 내려가는데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사업을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벤처 컨설팅 엑셀러레이터인 넥스트랜스 홍상민 대표도 "삼성 등 조직 시스템이 갖춰진 대기업 출신들은 창업을 하면서 대기업의 완벽한 시스템에만 천착한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업 운영에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며 "창업은 새로운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대기업 출신들은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대기업 출신자들이 대기업 조직 원리에 익숙해져 벤처창업에 핵심요소인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초기기업 전문 벤처캐피털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강석흔 이사는 "이 문제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며 큰 조직이라면 구글에서도 일반 사원들이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기는 어렵다"고 반론했다. 강 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 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대기업에서 나와 창업에 나서는 분들은 특출난 사람들로 이런 분들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