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GIC 이직자 촉발 나비효과 …1인당 2조 운용부담에 견책분위기 불만폭발
400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소치 올림픽에서 나타난 이른바 '안현수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다.
운용규모가 세계 3위권으로 성장했고 운용 실력도 10년간 연평균 6.5% 수익률로 3위에 올랐지만 각종 감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로 가중되고 있는 반면 운용 실무자들에 대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아서다.
28일 국민연금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인사 개편을 단행한 기금운용본부는 일부 팀장급 인사들의 이탈 및 이직으로 적잖은 여파를 맞고 있다. 이번 인사 '나비효과'의 발단은 고영호 대체투자실 실물투자팀장의 이직으로 시작됐다.
10년간 국민연금에서 부동산 등 대체투자 업무를 맡아온 고 팀장은 최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 이직하기로 하고 신변정리를 마쳤다. 고 팀장의 이직은 러시아에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를 떠올리게 한다.

국민연금에서 팀장 한명이 이직한 것은 어찌 보면 일상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상이 경쟁상대인 GIC라는 점에서 남은 운용역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은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주식이나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처에서 벗어나 부동산과 기업 M&A(인수·합병), PEF(사모투자전문회사) 등의 대체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에 관록이 있는 전문가를 경쟁국 국부펀드에 내준 꼴이기 때문이다. GIC는 부동산 실물투자에 밝은 고 팀장에게 투자성과에 비례하는 적잖은 성과 인센티브를 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기금운용본부는 실장 및 팀장급 인사를 사상 가장 큰 규모로 단행했다. 공석이 된 대체투자실 실물투자팀장 자리엔 이 분야 일을 해왔던 인물이 긴급 투입됐다. 국민연금은 도미노처럼 이어진 공석을 내부 회전문 인사로 채워냈다.
기금운용본부는 모자란 인원은 외부에서 충원하기로 하고 4~7명을 뽑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156명인 정원을 감안하면 올해 연말 1인당 운용자산은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 실무진들은 업무량 폭주로 인한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운용역들은 거액을 다루지만 이들의 보수는 민간이나 해외에 비해서는 10%이상 낮은 수준이다. 3년 단위 계약직으로 불안정한 신분을 이어가는 것도 이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런 대우에도 투자금융계에서 별다른 경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른바 '국민연금 배지'을 달기 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2~3년 고생을 하고 나중에 민간에서 큰돈을 벌려는 심산이다.
독자들의 PICK!
2009년까지 대체투자실장을 맡았던 온기선씨는 대신자산운용 사장을 거쳐 최근 동양자산운용 대표에 올랐다. 2012년 초까지 운용전략실 실장으로 있던 김희석씨는 한화생명보험에서 투자전략본부장(전무)으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 5억원이 넘는 연봉을 자랑하는 자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실무진들의 불만은 민간이나 해외 기금 등에 비해 낮은 보수에도 있지만 운용 독립성을 저해하는 지나친 간섭에 더 예민하다. 연봉이 낮은 것과 투자 성공으로 인한 인센티브가 거의 없는 것은 감수하더라도 일부 투자실패 사례들에 대해 관리기관인 복지부와 감사원, 국회 등이 과한 질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한 팀장급 인사는 "투자를 하다보면 성공과 실패 케이스가 있기 마련이고 그 결과는 평균 수익률로 평가돼야 하는데 감사 기관은 자신들의 실적을 돋보이게 하려 일부 실패 사례만 침소봉대하려한다"며 "이런 과도한 견책 분위기에서 누가 리스크를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고 적극적으로 일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캐나다는 1997년 연금개혁안을 마련하면서 운용독립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신규로 조성한 자금은 민간투자전문위원회인 CPPib를 신설해 다양한 포토폴리오를 구성해 투자할 수 있도록 전환한 것이다. 이들은 운용자금 60% 이상을 해외에 투자하고 대체투자비율도 18%에 육박한다.(국민연금 해외투자 15%, 대체투자 8%) CPPib는 국민연금에 비해 평균 2배 이상의 연봉과 충분한 성과보상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기금운용본부의 전라북도 전주 이전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2016년이면 운용 실무진이 모두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점도 잠재된 불안 요인이다. 젊은 운용역들 사이에선 2015년까지만 일하고 이후엔 민간에 자리를 알아보자는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전주 이전으로 인한 대규모 인력 이탈 가능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최근 삼정KPMG에 컨설팅을 의뢰해 운용 실무진의 보수를 합리화하는 대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친 검토 결과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보수책정에서 운용보수를 민간에 준하게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