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 사이언스]지킬박사 탄생시킨 뇌 질환, 정복은 언제일까

[뉴로 사이언스]지킬박사 탄생시킨 뇌 질환, 정복은 언제일까

테크앤비욘드 편집부
2014.08.03 08:41

'소마'에서 '프로작'까지...뇌에 전자칩 심어 관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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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병변이나 신경 이상이 외부 행동 장애나 신체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뇌 질환으로는 흔히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 헌팅턴 등 4대 퇴행성 신경 질환이 꼽힌다. 학계에서는 이들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비슷한 해결책을 얻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부의 병변이나 신경 이상이 외부 행동 장애나 신체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뇌 질환으로는 흔히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 헌팅턴 등 4대 퇴행성 신경 질환이 꼽힌다. 학계에서는 이들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비슷한 해결책을 얻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른 모든 과학 분야가 마찬가지지만 뇌 질환 역시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와 해법이 본격 제기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신 질환이나 치매 같은 뇌 질환이 정복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먹으면 행복해지는 약 ‘소마’가 보편화된 2540년의 미래가 그려진다. 소마는 1988년 화이자의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이 등장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현실화됐다. 프로작의 기본 원리는 우울증 환자의 뇌 속에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전달 물질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프로작이 현실에 등장하기까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뇌와 관련된 질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신분열(조현병), 우울증 등 겉으로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서 이상 증세를 보이는 내면의 정신 질환이 있는가 하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처럼 내면의 병변이 신체 움직임 등의 장애로 나타나는 뇌 질환도 있다.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의 원인을 ‘귀신에 씐 것’에서 찾았다. 실제로 마녀사냥이 활발하던 시기에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한 여성의 상당수가 이 같은 정신 질환을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현병은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악마의 병’으로 불렸다. 악마가 빠져 나가라는 뜻에서 머리에 구멍을 내는 시술이 광범위하게 실시되기도 했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 지킬박사 역시 조현병을 내면의 악 때문으로 보고 이를 분리하려는 시도를 하다 비극의 운명을 맞는 역할로 등장한다.

뇌 질환 치료 위해 말라리아 감염도

정신병원이 보편화된 이 시기의 과학자들은 수용하는 것 이외에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중증 정신 질환자들을 해결하기 위해 황당한 치료법을 시험했다. 정신 질환자의 인권 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라리아균을 체내에 주사해 고열에 시달리게 한 뒤 증상이 호전되기를 바라는 ‘말라리아 요법’(1911년), 인슐린을 주사해 의도해서 저혈당 쇼크에 빠지게 하는 인슐린쇼크 요법(1933년), 전기 충격을 머리에 집중 가하는 전기충격 요법(1934)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모두 뇌에 극도의 층격을 줘서 이른바 ‘리부팅’시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환자를 고통에 시달리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했을 뿐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1935년은 이 같은 정신 질환 치료에 일대 전기가 마련된 해다. 예일대 신경학자 존 풀턴이 침팬지 두 마리의 전두엽 신경을 절제하자 이들의 행동과 지능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행동이 난폭하고 감정의 변화가 심하던 침팬지는 수술 이후 행동 통제가 가능해졌다.

이에 착안한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는 이를 심한 정신 질환자에게 적용하려고 했다. 뇌의 한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면 정신 질환이 발생하고, 이를 제거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불과 3개월 후 첫 번째 전두엽 절제술이 환자에게 시술됐다. 시술은 그 후 1년간 약 20명의 우울증, 조현병, 조증, 공황장애 환자에게 이어졌다.

모니스는 이들 가운데 35%가 상당한 호전, 35%가 다소간의 호전이라는 성과를 학회에 정식 보고했다. 환자들이 고열, 구토, 배변·배뇨 이상, 안구 운동 이상 등 신체 부작용을 호소한 부분은 ‘일시성 부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사망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 전두엽 절제술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심지어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른바 노벨상의 ‘흑역사’로 꼽히는 사건이다.

결론으로 전두엽 절제술은 정신 증상의 호전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을 주는 행위에 불과했다. 심한 공격성은 없어졌지만 이는 전두엽이 없어지면서 감정이나 의사 표현 등을 할 수 없게 된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전두엽 절제술의 효과와는 별개로 현재도 이 같은 외과 기법은 뇌 질환 치료의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다만 뇌의 부분별 기능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특정한 영역을 목적으로 하는 ‘정위 시술법’이 주로 사용된다. 현재 통용되는 수술법으로는 전두엽 피질에서 파페즈 회로나 변연계로 가는 통로를 절제하는 전대상회절제술, 미상핵하 회로절제술, 안와 내측 피질 상부의 전두엽 피질을 국소 절제하는 뇌엽절제술, 내측피막절제술, 감마 나이프 수술 등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주인공 맥 머피(잭 니컬슨 분)가 정신병원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있다. 머피는 교도소보다 안락한 생활을 바라고 미친 척 연기했다가 전두엽 절제술로 자아를 잃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주인공 맥 머피(잭 니컬슨 분)가 정신병원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있다. 머피는 교도소보다 안락한 생활을 바라고 미친 척 연기했다가 전두엽 절제술로 자아를 잃게 된다.

전두엽 절제술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1958년 2월 제약회사 얀센의 설립자인 파울 얀센이 ‘할돌’의 물질특허를 등록했다. 얀센은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는 암페타민이 환각제로 남용되는 데서 착안, 도파민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을 쓰면 조현병의 핵심 증상인 환청과 망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은 모니스의 요법과 달리 실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할돌이 도파민 분비를 막으면서 파킨슨병 유사 증상이 부작용으로 나타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2세대 약물이 잇따라 개발됐다. 조현병을 유발하는 도파민 경로에 선택 작용을 해서 뇌 손상을 막는 효과도 있는 약물들이었다. 호르몬과 신경 계통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정신 질환 약물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약물의 효능 역시 다양해서 환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약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뇌에 전자 칩을 심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물질들을 자유자재로 분비하도록 원격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김태일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와 미국 워싱턴대, 일리노이대 공동연구팀은 쥐의 뇌에 5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전자 칩을 심은 뒤 원격 자극을 가해 도파민을 분비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가로, 세로 길이가 바늘구멍보다 작은 전자 칩을 개발해 그 안에 온도센서, LED 광센서, 뇌파센서 등을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칩은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을 칩과 연결된 센서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극도 가할 수 있다. 휘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장기나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으며, 이식도 가능하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이 연구가 뇌 과학 연구 및 뇌 질환 치료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 전자 칩을 사람에게 이식하면 복잡한 기계나 뇌 전도 기구 없이도 뇌파를 측정하고 뇌 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물론 자극을 통해 뇌 질환까지 근본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인체 내의 신호를 인공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뇌뿐만 아니라 모든 인체 장기와 신진대사, 로봇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 헌팅턴 4대 뇌 질환

내면의 병변이나 신경이상이 외부 행동 장애나 신체 능력 저하로 이어지는 뇌 질환으로는 흔히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 헌팅턴 등 4대 퇴행성 신경 질환이 꼽힌다. 모두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의 몸을 서서히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환이다. 이들 4대 질환은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서 전 세계 연구진이 원인 규명에 매달리는 의학·생물학계 제1의 정복 과제다.

알츠하이머는 전뇌기저부 뉴런이 기능을 잃으면서 나타나는 노인성 치매의 일종이다. 기억 상실, 방향 감각 상실, 의식장애 증상을 보인다. 파킨슨병은 흑질의 뇌세포가 사멸하면서 발생하며, 수의 운동 능력을 상실하게 한다. 알츠하이머와 달리 두뇌의 지능에는 전혀 영향이 없으면서 운동장애가 나타난다.

병을 앓던 뉴욕양키스의 유명 야구선수 루게릭에서 이름을 따 온 루게릭병은 척수의 앞쪽과 옆쪽에 위치한 신경 세포가 급속도로 노화하면서 생긴다. 세계 명성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역시 이 병을 앓고 있다. 앞의 세 가지 질환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헌팅턴병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날뛰듯이 거칠게 사지를 움직이기 때문에 ‘헌팅턴 무도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네 가지 질환의 공통점은 직접 원인이 대략 밝혀져 있지만 질환이 시작되는 원인이 다양하고 근본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진행 속도를 늦추는 방법만 알려져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알츠하이머의 경우에는 높은 수준의 추정만 가능할 뿐 실제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는지는 사망 후 부검을 통해서야 확진할 수 있기도 하다.

학계에서는 이 네 가지 질환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비슷한 해결책을 얻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대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뇌의 실체를 규명해야 궁극의 치료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수백 건의 알츠하이머, 파킨슨 관련 논문이 ‘획기할 열쇠’ 또는 ‘실체에 근접’이라는 제목을 달고 발표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연구단장은 “여러 가지 정신 질환이나 뇌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동시다발로 진행돼야겠지만 결국 뇌의 기능지도를 완성해야 정복을 말할 수 있다”면서 “좋은 치료약이 뇌의 어느 부분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종합해서 살펴야 하는 먼 길”이라고 말했다. ;

글= 박건형 서울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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