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으로 은행은 여수신업무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여신은 은행이 이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이고 수신은 반대로 돈을 받는 행위. 은행은 자기 돈은 조금만 갖고(은행이 굴리는 자금의 총액 대비 자본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후 그 이자 차액으로 돈을 번다. 땅 짚고 헤엄치기, 누워서 떡 먹기다. 은행업은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는 사업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은행과 달리 이용할 수 있는 사람에 제한을 두고 유사한 돈벌이 구조를 갖고 있는 게 신용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 등이다. 손쉽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니 법이나 정부로부터 많은 규제를 받고 감시·감독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여기에서 규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대표적 사례가 '유사수신행위'다. 금융업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받지 않고 이뤄지는 수신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유사수신의 원초적 모습이 계(契)이다. 순번계, 낙찰계 등이 해당된다. 수신(受信)은 원금보장 즉, 원금보다 후에 더 많은 돈을 준다는 뜻이다.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수신이 아니다. 그것은 투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돈을 받더라도 원금 이상 보장을 하지 않으면 유사수신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사기에 해당하면 사기죄로 처벌될 수는 있다.
그런데 은행, 보험, 증권, 신협, 새마을금고 등 법과 제도적으로 정비된 금융업이 많이 있음에도 유사수신업체가 활개를 치고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제도적인 금융업을 하는 회사들이 이용자들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쉽게는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돈을 맡기고 받는 돈이 성에 차지 않아서라고 보면 된다.
기본적으로 유사수신업체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그 유사수신업체가 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정상적 금융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은행, 증권, 보험 등의 금융회사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금융, 자본, 신용, 투자, 자산운용, 펀드 등의 명칭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기존 금융회사와 유사한 명칭의 상호를 사용하면 사법당국에 단속되고 말 것이므로 유사수신업체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유사수신업체 이용자는 자신이 제도권 금융이 아닌 사금융을 사용하고 있고 따라서 자신은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유사수신업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른바 'High Risk, High Return'. 물론 이와 같은 논리를 모르고 금융에 대한 지식 없이 지인의 권유로 유사수신업체에 돈을 맡기고는 땅을 치는 피해자도 있다. 그래도 은행보다 낫다는 이유, 이자가 높다는 이유로 돈을 맡긴 것은 분명하다. 유사수신업체와 이용자 중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일이 일어난 우리 금융시스템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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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희대의 유사수신행위 사건이 다시 회자되면서 정계, 법조계에 대한 로비 또는 비리 정도로 논의가 국한되는 것이 놀랍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건이라면 어째서 이 같은 몇조원대에 이르는 유사수신행위가 가능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개혁으로 금융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지가 먼저 논의돼야 할 것이다. 누구 한 명을 처벌한다고 유사수신행위가 가능한 금융환경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행법상 유사수신행위가 사기 등 다른 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유사수신행위로 인한 형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3조원이 넘는 피해를 운운하고 있는데 현행법으로 그에 합당한 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일을 기회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