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동생의 부인까지도…" 불황의 그림자 '친족 지능범죄'

"죽은 동생의 부인까지도…" 불황의 그림자 '친족 지능범죄'

이원광 기자
2015.11.12 05:25
실루엣 / 사진=유정수 디자이너
실루엣 / 사진=유정수 디자이너

#일용직 강모씨(53)는 2007년 5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문득 죽은 동생의 재산을 떠올렸다. 동생과 사실혼 관계에 있던 이모씨(51·여)가 1억4000만원 상당의 빌라를 신탁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

이는 숨지기 전 동생 강씨가 두 자녀의 양육비와 학자금에 대비해 마련한 부동산이었다. 동생 강씨는 전처 김모씨(51·여) 명의로 해당 부동산을 마련한 뒤 이씨에게 신탁했다. 강씨는 전처 김씨에 세금 문제로 이같이 결정했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던 김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같은 상황을 파악한 형 강씨는 2010년 3월 "동생에게 4000만원을 빌려줬으나, 동생이 숨진 뒤라 받을 수 없다"며 해당 빌라에 대한 9500만원 상당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를 근거로 사채업자한테서 360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이 부동산에 관심이 없었던 김씨는 강씨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허락해줬다.

결국 강씨는 지난 5일 횡령 혐의로 수원지검 여주지청에 구속 기소됐지만, 이후 해당 부동산은 경매를 통해 다른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간 뒤였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부동산은 죽은 동생 강씨가 당시 10대였던 딸과 아들의 양육비를 위해 구입해놓은 것"이라며 "동생이 죽자 형이 그 부동산을 가로챘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 속 가족에게 사기나 횡령 행각을 벌이는 '친족 지능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가족 공동체가 붕괴된 가운데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가족 범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족을 상대로 벌이는 지능범죄는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비동거 형태를 포함한 친족에 벌인 사기나 횡령, 배임 등 지능범죄는 모두 1598건으로, 2012년 1541건, 2011년 1464건에 이어 3년 연속 증가 추세에 있다.

이같은 현상은 가족의 범주가 과거 포괄적 확대 가족에서 점차 개인으로 축소되는 데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삶이 궁핍해지자 상대적으로 속이기 쉬운 가족들에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덧붙였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시로 접촉하던 과거와 달리 가족 관계의 질이 낮아지는 가운데 과거 도리상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이제 상속 분쟁은 드라마 속 재벌 뿐 아니라 평범한 가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계심을 앞세우는 타인에 비해 가족은 상대적으로 속이기 쉬운 대상"이라며 "범행이 드러나도 가족끼리 엄벌을 요구하기 꺼리기 때문에 가족 간 지능범죄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같은 가족 간 지능범죄가 향후 사그라질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경제적 불안에 장기간 노출된 점도 가족을 지능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주요 요인이라며 경제 침체와 경제 불안이 이어지면 가족 범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경제적 불안 속에서는 가족 간 예의나 인성보다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며 "가족한테 사기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탈물질주의를 지향하는 데 반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물질주의에 매몰되고 있다"며 "생활 수준이 개선됐음에도 내재된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여전히 돈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의 불평등 수준이 높으면 사회적 신뢰와 배려를 약화시키고, 결국 가족까지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며 "사회가 내재된 불안을 극복할만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현재 불평등 수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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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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