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도 감동줘야" 최연소 인간문화재의 사명

"전통문화도 감동줘야" 최연소 인간문화재의 사명

임실(전북)=김유진 기자
2016.08.27 03:01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현장을 가다] <6-1> 국가무형문화재 11-5호 임실필봉농악 양진성 보유자

[편집자주] 일상에 흩뿌려진 삶의 방식들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유산'이 됩니다. 무형문화유산은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즉 형태가 없는 유산이지요. 눈으로만 봐야 하는 유형유산과 달리, 무형유산은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을 다 사용해야만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답니다. 그만큼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접하기 어렵지만 진짜 우리의 문화, 즉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전해져 온 오랜 이야기는 유형유산보다는 무형유산에 훨씬 더 짙게 배어있습니다. 두 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축된 이야기가 담긴 삶의 터전을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11-5호 임실필봉농악의 양진성(50) 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가운데 최연소인 그는 "전통문화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11-5호 임실필봉농악의 양진성(50) 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가운데 최연소인 그는 "전통문화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유진 기자

어제까지만 해도 논밭에서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와 삼촌들이 '이날'만 되면 달라졌다. 전날 깨끗이 목욕재계를 하고, 빳빳하게 풀먹여 다림질을 한 새하얀 도포를 갖춰입었다. 노랗고 빨갛고 파란 색동 띠까지 두르면, 이보다 멋진 사람들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소년의 눈에 농악대원으로 변신한 어른들은 마치 연예인 같았다.

"아버님이 풍물을 치시면 나는 무동이라고 해서 그 안에서 춤을 추는 역할을 맡았어요. 아버님이 꽹과리를 치면서 농악대를 이끄는 모습, 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좋은 쪽으로 제 마음에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양진성 국가무형문화재 11-5호 임실필봉농악 보유자(50)는 필봉농악의 본고장인 전북 임실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아버지 고 양승용 상쇠의 뜻을 이어 2대째 필봉농악 보유자를 맡고 있으며, 20대 초반인 그의 두 아들 또한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며 필봉농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농악 집안'인 셈이다.

필봉농악을 꽃피운 3대 상쇠였던 아버지가 1995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받아 보유자가 됐다. 2008년, 42세의 나이로 최연소 인간문화재가 된 것이다. 보유자가 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인간문화재 가운데 '최연소'다. 동갑인 줄타기 종목 1명과 함께 가장 젊은 인간문화재로 기록돼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 농악을 배운 그는 때맞춰 생겨나기 시작한 국악과에 진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박사과정만 국문학을 전공해 '필봉농악의 공연학적 연구'라는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난 47년간 필봉문화촌에서 농악을 전수받은 사람 수가 60만 명에 달해요." 그가 대장으로 있는 필봉문화촌은 전수자들로부터 소정의 교육비를 받아 운영된다. 현재 월급을 받으며 상주하는 직원만 25명. 다른 무형문화재 종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규모다. 문화재청에서 종목 보전을 위해 주어지는 보조금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전통문화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감동 없는 예술은 사장되게 되어있습니다. 공연자가 노력해서 감상자들에게 예술적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문화재청이나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어요. 전통문화를 누구나 좀 더 쉽게,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 것을 지키는 최우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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