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차별요인에 블라인드 치자 VS 뭐가 보여야 뽑지

문재인 대통령 대표공약 '블라인드 채용제'가 확산일로다. 지지율 70% 인기를 달리는 대통령이 역점으로 밀어붙이는 일이다. 공공기관 적용은 지방까지 확대된다. 민간도 이에 발맞춰 블라인드 채용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강한 추진만큼이나 논란도 커지고 있다. 채용 현장에서는 조금씩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뭘 보고 뽑으란 것이냐"는 현실적인 애로사항이다.
정부가 밝힌 블라인드 채용방식에 따르면 입사지원자에게 출신지역·가족관계·학력 신체조건 등에 대한 요구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이력서에 사진도 부착할 수 없다. 신체조건이란 키·체중·용모 등이다. 단 특수경비원이나 연구원 같은 직무수행에 필수적인 경우에 한해 신체조건과 학력 기재를 예외로 인정했다.
청년채용을 확대하는 한편 차별을 막고 기회균등을 보장한다는 차원이다. 공공기관부터 민간까지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되면 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 문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부문 채용할 때 블라인드 채용제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은 이달부터 공공기관에, 다음달부턴 지방공기업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하반기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채용 규모는 약 1만명. 공공기관 332곳은 이달부터, 지방공기업 149곳은 8월부터 이 제도를 전면 도입한다. 행정자치부는 9월부턴 663개 지방 출자·출연기관을 포함한 지방 공공기관 전체에 대해 이를 확대·시행키로 했다. 관련 지침(가이드라인)도 12일 배포했다. 일부 민간기업도 이를 발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고민정 "업에 대한 면접 질문만"= 블라인드 채용이 국내 첫 도입은 아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블라인드 채용'의 모범사례 격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기간 그렇게 수차례 언급했다. 그를 부대변인에 발탁한 배경에 능력뿐 아니라 이 같은 상징성도 깔려 있다.
고 부대변인은 2003년 가을 KBS 입사 전형을 치러 2004년 입사했다. 엄밀하게는 '블라인드 면접'이었다. 그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면접관들이 본 자기소개서에 고향, 부모님 직업, 출신학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 모두 지운 상태였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질문도 아나운서라는 업에 대한 것이지, 가정환경과 같은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블라인드 채용의 본뜻은 '스펙을 가린다'에 머물지 않고 업무능력을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공정한 채용을 지향하는 방식인 셈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KBS도 이런 채용방식을 부활할 전망이다. KBS는 2003~2009년 블라인드 면접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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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채용"..관련산업 타격 우려=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인 장벽도 적잖다. 구직자 정보 부족에 따른 ‘깜깜이 채용’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첫 손에 꼽힌다.
학력과 전공은 '능력'의 한 부분이지 별개가 아니란 것이다. 또 블라인드 채용이라도 관련 교육과정 이수 내용을 적게 돼 있는데 자연스럽게 학교, 학과, 학점이 드러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이른바 인(in)서울 대학 출신이거나, 전통적 유력 대학 주변엔 역차별이란 인식도 있다.
과거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과 비슷한 파장도 나타나고 있다. 사진관 운영자들이 포함된 프로사진협회는 "밥그릇을 빼앗아 가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이력서 사진을 붙이지 않아도 되면 증명사진 수요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미 외국계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 중이다. 이 경우도 성 외모 인종 등 혹시 있을지 모를 '소수자' 차별을 막기 위한 조치이지 학교·학력까지 숨기는 취지는 아니다. '전면 블라인드'가 자칫 역차별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SKY 아니어도' '70대 노인도'…학력·지역·나이 차별금지 법안들
대선 이후 국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블라인드 채용' 관련 법안 발의가 줄잇고 있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자는 움직임은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더 나아가 학력·고향·나이 등 고용상의 차별 금지 대상을 명문화하려는 것이 20대 국회 움직임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안 5건을 발의했다. 이중 민병두 의원 발의안과 신창현 의원 발의안, 박광온 의원 발의안이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지난달 2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수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서 채용할 때, 블라인드 채용제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말한 이후 발의됐다.

민 의원은 지난달 23일 발의한 개정안에 '구인자가 구직자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해 포괄적으로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을 막도록 했다. 이어 구인자가 구직자가 채용 대상 업무에 적격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필요 없는 정보를 지원서나 필기시험, 면접 등에서 질문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조항도 신설키로 했다. 구직자가 채용 대상 직무에 대한 정보를 알고 적격한 정보만 구인자에게 제출할 수 있도록 채용 대상 업무와 임금, 채용 예상 인원 등의 정보를 채용 광고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도 신설토록 했다.
신 의원도 민 의원과 같은 날 이 법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은 구직자의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구인자가 인권 침해를 하거나 성희롱·모욕적 언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신체적 조건에는 포괄적으로 성별은 물론 장애 여부, 연령, 외모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사회적 신분'이라는 표현으로는 학벌과 출신 지역, 심지어는 다문화가정 등 가정사 등까지 차별 금지 대상을 확대할 수 있다.
국정자문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박 의원의 개정안은 보다 구체적이다. 지난 10일 발의된 이 개정안에는 '공공기관부터 채용과정에서 차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학력·출신지·신체조건 등이 기재된 서류의 제출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문 대통령의 '블라인드 채용' 구상을 가장 구체적으로 반영했다. '학력'과 '출신지', '신체조건'으로 차별 금지 대상을 명시했을 뿐 아니라 당장 블라인드 채용을 적용할 곳을 '공공기관'으로 명문화해 지정한 것이다.
특히 박 의원 개정안은 여당 의원뿐 아니라 야당인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도 발의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김수민·이찬열 의원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해 현재 국회에서는 '출신지역차별금지법(가칭)'도 입법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실제 발의가 될 경우 잠정적으로 야당 소속의 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대표 발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재룡 국회 교문위 수석전문위원이 지난달 27일 개최한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 인사를 금지하기 위한 입법의 필요성과 쟁점' 주제 입법 포럼에서 논의된 후 실제 입법이 추진되는 것이다. 인사나 고용에서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차별이 일어났을 때 이를 처벌하는 규정도 법안에 담길 전망이다.
당시 정 위원은 "정권에 따라 출신지역을 차별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공정한 인사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며 "특정지역출신이 오랜 기간 차별을 받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정치문제가 아닌 인권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