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쓰는 물통보다 작다.
흔히 쓰는 컵보다 큰데 손잡이가 없다.
뚜껑이 있고 재질은 스테인리스나 두툼한 플라스틱이다.
어떤 물건에 대한 묘사다. 만약 이것이 갓 생겨난 것이라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미 떠올린 이름이 있을 것이다. 커피전문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텀블러'다.
텀블러가 인터넷에서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1일 국립국어원이 우리말 다듬기를 통해 텀블러를 대신할 말로 '통컵'을 제안했을 때다.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간 관련 기사는 900개 정도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댓글의 반응은 대부분 별로 좋지 않거나 매우 나빴다.
"우리말로 했다더니 왜 컵이 들어가냐"는 반응이 많았고, "외래어는 그냥 외래어로 두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왜 통컵이었을까? 국립국어원의 한 연구관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우선 우리말 다듬기 활동은 외래어를 몰아내려는 순혈주의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말을 찾으려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컵은 텀블러의 원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텀블러(tumbler)는 영어 tumble에서 나온 말인데, 여기엔 '굴러 떨어지다', '공중제비 넘다'라는 뜻이 있다. 손잡이가 없어 구를 수 있는 컵의 특징이 반영된 말인 셈이다. 물통, 드럼통, 깡통 등의 모양을 생각해 보면 '통컵'이 나온 과정이 설명은 된다.
많은 사람들이 텀블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뭐야?'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익히고 익숙해진 뒤에는 누군가가 다른 말로 바꾸자고 할 때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구나 그런 제안이 지금 쓰는 말이 잘못됐다는 지적으로 들린다면 반감도 들 수 있다.
국립국어원의 또 다른 연구관은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텀블러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 통컵이라고 했더라면…"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만약 '플라스틱백(plastic bag)'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다면, 누군가 '비닐봉지'로 바꿔 쓰자고 제안했을 때 통컵과 같은 반응이 나왔을지 모른다.(plastic bag은 비닐봉지의 영어식 표현.) 고심 끝에 제안한 말도 대중들이 거부하면 쓰일 수 없다. 말은 기본적으로 대중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쓰는 말에는 어려운 한자어가 많고, 영어식 표현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엔 영어 단어 여러 개가 묶인 표현들도 눈에 띈다.
다듬은 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 다듬기 움직임 자체는 선입견 없이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은 국어원에서 제안한 다듬은 말들 중 몇 개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더러는 괜찮다 싶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로파일러→범죄분석가, 자동제세동기→자동 심장 충격기,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즉시퇴출제, FAQ→자주 하는 질문, 디퓨저→방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