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브라질 올림픽 펜싱 에페 결승전에서 우리나라의 박상영 선수는 ‘할 수 있다’는 혼잣말을 되새긴 후 극적인 금메달을 따서 온 국민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습니다.
비록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키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계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거론됩니다. 비타민이나 설탕물 등은 환자의 증세를 치료하는 물질이 아닌데도 심리적 안정을 줌으로써 환자가 치료가 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약효가 없는 약이라도 환자에게 투여할 때 실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혹은 위약효과(僞藥效果)라고 부릅니다.
플라세보는 보통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심리상태에 영향을 잘 받는 환자에게 효과를 발휘합니다. 예전에는 주술사가 주문이나 사술을 써서 환자를 치료할 때도 이용했던 방법입니다.
오늘날에는 치료 목적 뿐 아니라 기업의 판매활동, 경제분위기 전환, 정치적 목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플라세보가 쓰이고 있습니다.
화장품 광고에서는 화사한 얼굴의 여자 연예인이 등장해 사용하기만 하면 마치 그 연예인처럼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또한 국민간식 오리온 초코파이의 ‘정(情)’ 문구는 초코파이를 나눌 때 마음까지 전달된다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미국의 경우 엘리베이터는 1990년대 이후 장애인 등의 안전을 고려해 닫힘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데 그대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닫힘 버튼을 봄으로써(작동하지 않는데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낙관적인 경제전망이 경기국면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견해도 많습니다.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에 의하면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가 오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실제 이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경제를 다시 재건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압축성장과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플라세보 효과가 중요한 작용을 했습니다.
다만 플라세보는 심리적 안정감으로 병을 호전시킬 수 있어도 항상 치료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플라세보의 본질은 ‘가짜 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청년실업, 가계부채, 경제성장률 둔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핀테크, 문화융성, 경제혁신 등 여러 경제활성화 대책들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실업과 가계부채 문제 등은 악화되고 경제심리 위축은 계속되어 경제성장률은 3% 아래에서 올라올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활성화 목적으로 정부사업에 투입된 수천억원의 예산이 줄줄 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과 친분을 내세워 불법 개입한 혐의로 최순실과 공무원들이 잇달아 구속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에만 일명 ‘최순실 예산’이 3500억원 이상에 이릅니다. 또한 ‘최순실 사태’ 등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은 5%대로 바닥까지 떨어졌고 국정파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해운·항만의 방만한 경영, 도박 및 정·관계 로비 등으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던 기업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으로 800억원대 자금이 흘러들어갔습니다.
필요한 사업에 쓰일 예산과 투자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새면서 실제 투자보다는 플라세보 효과에만 의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실질적 대책 없는 플라세보 구호만으로 ‘약발’이 듣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플라세보 효과가 발생하려면 신뢰감이 있어야 합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개연성 있는 상황에서 말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의사가 치료를 위해 “이 약이 효과가 좋아요” 라고 권하는 것과 일반인이 뜬금없이 말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또한 플라세보는 선의의 거짓말이어야 합니다. 의사라도 악의적으로 ‘가짜 약’을 권하면 불법이 되고 환자의 병은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에는 신뢰감 없는 ‘가짜 약’보다 더 좋은 치료제가 있다면 그 약을 사용해야 합니다. 가장 필요한 사업에 정부예산과 기업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병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나중에는 아무리 좋은 약을 권해도 약효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가 나타날까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