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빛 좋은 우리 스타트업의 화이부실(華而不實)

[투데이 窓]빛 좋은 우리 스타트업의 화이부실(華而不實)

최재홍 가천대학교 스타트업 칼리지 교수
2026.02.19 02:05
최재홍 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 교수
최재홍 가천대학교 스타트업칼리지 교수

화이부실(華而不實)이란 말은 '꽃은 있으나 과일이 없다'는 뜻이다. 반평생 스타트업업계를 서성인 1인으로서 최근 스탠퍼드의 일야 스트레불라예프 교수가 발표한 유니콘 데이터 하나가 필자의 머리를 때린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 스타트업의 기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전시회 CES는 앞의 컨슈머(Consumer)가 코엑스(Coex)로 불릴 만큼 한국 기업들의 독무대다. 한국은 전체 혁신상의 절반 넘게 가져가며 3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랐다. 우리의 미래인 유레카파크에 한국 스타트업 부스로 '코리아 빌리지'를 형성하고 한국의 혁신적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낸다.

또한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프랑스의 '비바테크놀로지'에서 한국은 2023년 '올해의 국가'로 선정된 이후 매년 대규모 통합관을 꾸려 유럽시장의 심장부를 공략한다. 핀란드의 '슬러시'나 스페인의 'MWC', 영국의 글로벌 콘퍼런스에서도 한국 스타트업들은 피칭대회 상위권을 휩쓸며 기술력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미국 최고의 발명상으로 불리는 '에디슨어워드'에서 매년 두 자릿수 메달을 따내고 포브스가 선정하는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명단에도 매년 한국 창업자들이 20명 가까이 이름을 올리는 등 대단한 업적을 쌓고 있다. 기술력과 열정만 보면 한국은 이미 완성된 최고의 창업강국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그런데 이러한 화려한 겉모습과 추앙, 찬사의 뒤편에는 믿기 힘든 초라한 실질적 결과가 숨어 있다. 혁신상 수상을 훈장처럼 달고 귀국한 수많은 기업 중 실제 기업가치를 증명하며 유니콘으로 도달한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앞에 언급한 일야 스트레불라예프 교수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전 세계 유니콘 1500여개사 중 한국 기업은 고작 16곳 남짓으로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충격적인 것은 성장속도와 비교국가들이다. 미국과 중국이 대부분인 것은 인정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스타트업에 별 관심이 없던 일본은 최근에야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유니콘 수를 빠르게 늘리며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고 인구 600만명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조차 글로벌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한국보다 많은 유니콘을 보유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질적인 불균형이다. 글로벌 유니콘의 흐름이 AI와 딥테크 중심으로 재편되는 동안 한국의 유니콘은 절반 가까이가 내수시장을 쪼개 먹는 소비재나 유통 플랫폼에 쏠려 있다. 기술력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지 몰라도 그것을 돈이 되는 비즈니스로 연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년으로 주요국 평균보다 한참 늦다. 최근에는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까지 점점 시간이 짧아지고 규모는 커지는 게 현실이다. 우리 스타트업들이 세계 곳곳의 전시, 경연대회에선 주인공 대접을 받지만 정작 시장이란 전쟁터에선 글로벌 자본의 선택엔 높은 벽이 있고 양적 성장에 비해 세계 시장에서 자생력 부족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불일치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만든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으로 만들어진 전시용 성과와 홍보수치들은 화려하지만 정작 민간자본의 선순환이나 규제혁파 같은 실질적인 성장의 토양은 여전히 척박하다. 기업이 성장할수록 늘어나는 촘촘한 규제와 좁은 내수시장에 갇힌 비즈니스모델은 세계적 수상의 영광을 실질적인 기업가치로 바꾸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지금의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박수소리는 요란하지만 수확할 열매가 부족한 축제장과 같다. 화이부실은 우리 말로 바꾸면 '빛 좋은 개살구'다. 심한 말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기회가 있는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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