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오후 6시와 직장 내 사무실. 고정적인 근무 시간·장소는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월급쟁이들의 근로 형태였다. 정부가 틀에 박힌 일하는 형식을 깨뜨리려 해도 회사와 직장인은 꿈쩍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기업 근무 방식은 확 바뀌었다. 코로나19(COVID-19)가 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2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는 노동자가 개인 사정에 따라 근무 시간·장소 등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1997년 3월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부는 장시간 노동으로 붙어진 '과로사회'라는 오명을 탈피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일의 질을 양보다 우선해야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판단도 했다. 정부는 유연근무제가 보편적인 근로 형태로 자리 잡은 미국·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정착 노력을 했다.
유연근무제 대표 유형은 △근로시간 단축근무제 △시차출퇴근제 △선택적 근무시간제 △재택 및 원격 근무제 △탄력적 근무제 등으로 나뉜다. 노동자는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집에서 일하거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또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특정 요일 업무 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유연근무제를 실시한 지 24년이 지났지만 도입률은 저조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사업주가 가장 많이 도입한 유연근무제는 시차출퇴근제였다. 하지만 도입 비율은 17.2%에 그쳤다. 이어 시간선택제(13.4%), 재택근무(4.5%), 원격근무제(3.5%) 순이었다.
기업은 유연근무제 시행에 따른 비용 부담, 노동자는 임금 삭감 우려로 도입을 반기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서구권 국가와 비교하면 낮은 유연근무제 도입률은 더 도드라진다. 미국(2014년)의 시차출퇴근제, 시간 선택제 도입률은 각각 81.0%, 36.0%다. 유럽(2013년)의 같은 제도 도입률은 각각 66.0%, 69.0%다.
그러다 보니 유연근무제 도입 취지였던 장시간 노동도 해소되지 않았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연 근로시간은 1967시간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하는 축이다. 미국(1792시간)보다 200시간 가까이 많고 독일(1305시간)과는 662시간 격차 난다. 하루 8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독일보다 82일 더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 24일까지 고용부에 유연근무제 간접노무비 지원을 신청한 기업과 노동자는 하루 평균 각각 4.4개, 31명이었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시화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3일까지 신청 기업, 노동자는 각각 55개, 809명으로 급증했다.
위기상황 대응용이긴 하나 유연근무제가 기업의 근무 형태로 정착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증소·중견기업의 유연근무제 도입을 유도하기 위해 간접노무비를 지원하고 있다. 노동자 한 명이 주 1~2회, 주 3회 이상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면 각각 5만원, 10만원을 받는다.
고용부 관계자는 "경제 수준에 맞게 일하는 방식도 혁신해야 하는데 코로나19 발생 이후 유연근무제를 선택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며 "유연근무제 활용 기업은 인센티브 부여, 금리우대, 정부지원사업 가점 등 혜택을 받는데 민간이 자발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사업주나 노동계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