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봉인된 '한일 FTA'…넘어야 할 벽은?

세종=박광범, 김주현 기자
2026.01.03 07:35

[한일, 생존의 연대]<2-⑧>

[편집자주] 2025년은 갈라진 세계, 갈라진 경제를 체험한 해다. 세계 경제는 보호무역 확산과 다자주의 붕괴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에 놓였다. '지경학(geoeconomics)의 시대', 한국 경제는 생존을 걱정한다. 일본 상황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등 핵심 밸류체인을 공유하고 저성장·고령화라는 난제를 함께 안고 있는 두 나라. 한일 경제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불확실성 시대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모델로 거론된다.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한국의 FTA 발효국가/그래픽=이지혜

한국은 명실상부한 'FTA(자유무역협정) 우등생'이다. 현재 59개국과 협정을 발효했다. 한-UAE(아랍에미리트) 등 10개국과는 타결 후 발효만 남겨뒀다. 'FTA 영토'를 전 세계로 넓혔지만 유독 이웃 나라 일본은 없다.

한국과 일본이 처음 FTA 체결 논의를 시작한 건 김대중정부 시절이던 1998년이다. 외환위기 속 개방과 구조개혁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일본 역시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역내 경제 협력이 절실했다. 민간과 산관학 연구가 이어졌다.

2003년 10월 태국 방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5년 타결을 목표로 교섭 개시를 선언했다. '민감 분야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포괄적 FTA' 원칙에 합의하고 상품·서비스 등 6개 분야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이후 1년여간 6차례 오갔다. 거기까지였다. 2004년 11월을 끝으로 협상은 멈췄다. 한국 내 대일 무역적자 심화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제조업 경쟁력 열위 탓에 일본산 소재·부품이 쏟아지면 적자폭이 감당 못 할 수준으로 커질 것이란 공포였다. 마침 미국·EU(유럽연합)와 FTA를 추진하며 일본은 뒷순위로 밀렸다.

일본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농업 개방 저항감이 컸다. 대신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세안(ASEAN) 공략에 속도를 냈다. 한국이 지금 공들이는 멕시코 시장도 일본이 먼저 선점했다. 한일 FTA는 그렇게 22년째 사실상 '봉인된 의제'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일 경제연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패권경쟁 속 대외 환경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위험)가 부각되면서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양국에 생존을 위한 공조는 필수다.

셈법도 달라졌다. 과거의 단순 손익 계산을 넘어선다.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협력이 시급하다.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력과 한국의 제조·양산 역량 결합은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실적 대안으론 일본 주도의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이 꼽힌다. 단계적으로 FTA 효과를 노리자는 주장이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보호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본이 CPTPP를 통해 자유무역 연대를 확대하고 있다"며 "우리가 CPTTP에 참여하면 한일 간 경제연대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CPTTP를 하면 관세 분야에선 한일 FTA와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CPTTP 가입을 기초로 한일 FTA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도 "정치 외교적으로 쉽진 않지만 지금은 경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한일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확산되려면 한일 양국 정부가 먼저 멍석을 까는 게 첫 걸음이다. 국익을 위해 정부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실 가능성이다. 과거사뿐 아니라 농수산물 개방 여론이 여전히 걸림돌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신중론을 폈다. 김 총리는 최근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한일 교류 확대를 위해 FTA나 CPTPP 외 다른 프로젝트를 먼저 고민하자"고 했다. 젊은 층의 심리적 장벽은 낮아졌지만 당장 추진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 이유로 김 총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농수산물 문제 때문"이라고 짚었다. CPTPP 가입 과정에서 일본 측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 등을 '입장료'로 제시할 것이 뻔해서다. 앞서 윤석열 정부 때도 CPTPP 가입을 국정과제로 추진했지만 2023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가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면서 추진 동력을 잃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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