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만료를 앞두고 정부가 매물 출회를 압박하면서 서울 주요 지역의 매물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거래량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거래량이 전월 대비 6분의 1로 급감한 자치구가 있을 정도. 매물 증가와 거래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는 '거래 실종' 현상이 서울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거래 실종이 가장 극명한 곳은 성동구다. 24일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성동구 아파트 매물(이하 23일 집계 기준)은 1212건에서 1817건으로 49.9% 증가했다. 한강변과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서울에서도 가장 개발 기대감이 높은 곳에서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셈이다.
그러나 거래량은 늘어난 매물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성동구 아파트 거래량은 1월 123건에서 2월 22건으로 쪼그라들었다. 아직 신고되지 않은 계약을 감안하더라도 거래 흐름이 원활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치다.
상급지로 분류되는 다른 자치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송파구는 같은 기간 매물이 3526건에서 4922건으로 39.5%, 동작구는 1249건에서 1665건으로 33.3% 각각 증가했지만 거래는 모두 부진하다. 송파구의 거래량은 1월 304건에서 2월은 60건 수준으로 줄었다. 동작구의 거래량도 같은 기간 171건에서 34건으로 감소했다.
이밖에 광진구, 마포구, 강동구 등에서도 매물이 일제히 30% 이상 증가했지만 거래량은 이를 따라오지 못했다. 매물은 쌓이는데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소화 불량' 상황이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거래 실종에 대해 '정책발 매물 증가'와 '금융발 수요 위축'이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을 우려해 일부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실수요자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 등 강화된 대출 문턱에 가로막혀 매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지정 지역에서는 실거주 요건과 자금조달 계획 심사가 더해지면서 실거주가 아닌 투자 수요는 원천 차단된 상태다. 여기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싼 급매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 심리까지 겹치면서 매수자들은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매도자는 가격을 쉽게 낮추지 못하고 매수자는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버티는 전형적인 거래 경색 구간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거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매물 증가만으로는 시장 왜곡을 해소하기 어렵고 실제 거래가 이뤄져야 가격이 형성되고 수급 균형도 맞춰진다는 판단이다. 현재처럼 거래가 막힌 상태가 장기화하면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시장 불확실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선별적 금융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생애 최초 구입자나 1주택 갈아타기 수요에 한해 스트레스 DSR 적용을 완화하거나 정책금융 한도를 확대해 자금 조달 여력을 높여주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실수요자가 자가 매수에 나설 수 있어야 적체된 매물이 소화되고 거래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금융 완화가 자칫 집값 상승 기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정책 당국의 고민 지점이다. 전월세 시장이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며 매매가격의 하방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거래 회복이 곧바로 가격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계절적 이사철 실수요 증가에 따라 매매 매물 소진이 속도도 빨라 질 수 있는 만큼 좀 더 시장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