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발 원자재 공급불안이 가중되면서 건설업계에 4월 위기설이 확산한다. 당분간은 비축물량으로 공사를 이어갈 수 있지만 비축물량이 동나는 다음달 말부터는 공사지연을 넘어 동시다발적 공사중단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일부 대형건설사가 공사비 상승과 공기지연 가능성을 공식화하는 등 업계 전반이 '공급 리스크 현실화'를 전제로 한 선제대응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3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서울시 은평구 대조1구역 사업장에 '공사비 원가 상승 및 공기 지연 우려'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공사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건설은 '도급계약 제33조에 따른 공사기간 연장 협의필요' 문구도 명시했다. 이는 전쟁 등 외부요인으로 공사기간이 길어지거나 공사비가 대폭 증액되는 경우를 가정하고 그에 대한 사유를 미리 문서에 남겨놓기 위한 움직임이다. 전쟁으로 인한 공사지연이나 공사비 증가 등에 대해 '불가피성'을 선언하고 그에 대한 건설사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다.
이번 공문에는 공사비 상승 압박에 대한 내용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현대건설은 자재 협력사들이 유가와 환율 상승, 운송비 증가 등을 반영해 4월 일부 자재가격을 일제히 10%에서 최대 40% 인상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대상품목도 페인트, PVC(폴리염화비닐) 창호, 단열재, 방수재, 도배지 등 건축자재 전반에 이른다.
다른 대형건설사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공문발송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수급상황과 가격변동을 반영해 원가율 조정을 검토하는 등 대응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한 건 현재 건설사들이 주목하는 변수가 가격이 아니라 공급이라는 점이다. 가격은 일정부분 통제가 가능하지만 공급이 끊길 경우 공사중단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미 공사현장에서는 일부 건자재 품목을 중심으로 공급차질 조짐이 나타났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나프타 영향을 받는 단열재와 방수재 등의 경우 공장에서 생산중단까지 언급될 정도로 수급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자재부족에 따른 공기지연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분해해 생산하는 에틸렌은 혼화제 등 건설용 화학제품의 주원료로 사용된다. 혼화제는 콘크리트의 유동성과 작업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소재다. 사용량은 많지 않지만 대체가 쉽지 않아 공급차질이 발생할 경우 품질저하와 시공지연으로 직결될 수 있다. 다른 대형사 관계자는 "현재 비축물량으로 4월 말까지는 (공급부족에) 대응할 수 있다"면서도 "이후에는 에틸렌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수급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은 장비가동과 자재운송 과정에서 유류의존도가 높고 석유화학 기반 자재 비중이 커 에너지가격과 공급망 변화에 취약한 구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유가가 10% 상승하면 건설생산비용은 0.21% 오르고 50% 상승시에는 1.06%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용상승 영향도 경유 35.2%, 레미콘 8.5%, 아스콘 8.4% 등 핵심 투입요소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구조가 단순 원가부담을 넘어 공정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건설기계의 90% 이상이 경유를 사용하고 자재운송 역시 육상물류에 의존하는 만큼 연료와 자재 공급이 동시에 흔들릴 경우 공사수행 자체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직 자재재고가 일정수준 남은 만큼 단기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시간을 벌고 있는 단계 정도라고 본다. 공급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착공지연과 공기연장이 현실화하고 이는 공사비 상승을 거쳐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연쇄충격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인상은 불가피하고 자재수급 불안이 지속될 경우 공사현장이 멈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